22-02-20_창30(1-24)_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얻는 구원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Feb 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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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본의 아니게 아내 둘을 두게 되었습니다. 외삼촌이면서 동시에 장인이 된 라반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라반의 딸 중에서 막내 라헬을 사랑하여 결혼을 허락받은 건데, 결혼 첫날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라헬이 아니고, 언니인 레아였습니다. 당시엔 신부가 자신의 얼굴을 베일로 가린 채 신랑과 결혼 첫날 밤을 보내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겁니다.
레아 역시 본의 아니게, 아버지에게 강요를 당하여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함께 야곱을 속이고, 동생의 자리를 빼앗은 겁니다. 이러한 속임수로 야곱이 레아와 결혼하게 만든 라반의 저의를 정확하게 알 길은 없지만, 그가 야곱에게 실토한 이유에 의하면, 그가 살고 있는 고장의 법은 큰 딸을 두고서 작은 딸부터 시집보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야곱은 오직 라헬을 사랑하여서 그녀를 아내로 얻기 위해, 이미 라반을 위해 7 년간 그의 일을 맡아서 해주었기 때문에, 라반은 야곱에게 이미 그의 아내가 된 레아와의 초례 기간을 7 일간 채우라며, 그 후에 라헬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화가 있는대로 치밀어 올라 있는 야곱의 마음을 달랬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얼떨결에 두 아내를 둔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결혼은 본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어 사는 삶이고, 이것이 결혼제도를 만드신 창조주의 본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남편이든 아내이든, 배우자를 하나 이상으로 두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처음 아내를 한 사람 이상 두었던 사람은 라멕이었습니다. 라멕은 가인의 육대 손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사실은, 가인은 주님 앞에서 살지 않고 떠나서 산 사람인 것과, 그의 육대 손이었던 라멕은 창조주가 세우신 일부일처 결혼제도에서 떠나서 아내를 둘을 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후손이 하나님의 법과 뜻에서 떠난 삶을 택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본 뜻을 무시하고, 아내를 하나 이상 둔 사람들의 삶은 항상 불행한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사라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남편의 아들을 자기 몸이 생산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자기 남편 아브라함에게 아내로 주어서,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스마엘을 낳아 준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가정 안으로는 이스마엘과 함께 불화가 찾아 들어왔고, 결국에 가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쫓아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불행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사라와 하갈은 한 남편을 공유하면서 결코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없었던 겁니다.
이 경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중요한 교훈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삭은 아내를 한 사람 이상 두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이삭의 어머니 사라처럼, 임신을 하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삭은 자기 부모가 택했던 것처럼, 다른 아내를 더 두어서 자기 대를 이어갈 아들을 낳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택한 길은 하나님이 자기 아내를 임신하게 해주실 때까지 끊임없이 믿음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했던 겁니다. 주님은 이러한 믿음의 길을 택한 이삭을 기뻐하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그가 기도한 지 20 년 만에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임신을 할 수 있었고,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을 낳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삭의 쌍둥이 아들들 중에서 맏아들이었던 에서는 일찍부터 자신의 장자권에 대해서 그다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을 받아 먹기 위한 값을 자기의 장자권으로 지불하여, 그것이 야곱의 권리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에서는 결혼을 위해 아내를 얻는 일도 부모의 조언을 따르거나 신중하게 고려하여 하지 않고, 할아버지 아브라함 때부터 지켜 내려온 철칙을 무시하고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삼았는데, 그것도 한 아내를 둔 것이 아니라 두 아내를 두었습니다. 결혼에 대한 에서의 경홀한 생각과 선택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드러내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것이므로, 하나님께도 기쁨이 되지 않았지만, 결국엔 그 부모에게 큰 근심거리를 만들어 드리기만 했습니다.
반면에 에서의 동생 야곱은, 스스로가 에서의 길을 가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이삭의 뜻을 받들어서 자기 아내를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얻지 않고, 밧단 아람에 사는 부모의 친족들 중에서 얻으려고 밧단 아람으로 갔습니다. 이를 위해서 이삭이 야곱에게 분명하게 지시한 말 중에는 야곱은 반드시 외삼촌 라반의 딸들 가운데서 그의 아내가 될 사람을 찾아서 결혼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지시한 말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외삼촌 라반의 딸들(복수) 가운데서 네 아내가 될 사람(단수)을 찾아서 결혼하여라”(창세기 28:2). 아내감을 찾기 위해서 둘러 볼 대상들은 여럿(“딸들 가운데서”)이지만, 막상 아내감으로 선택할 대상은 한 사람(“아내가 될 사람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외삼촌 댁으로 찾아 갔고, 그의 딸들(레아와 라헬) 중에서 라헬 한 사람에게 마음이 끌렸고, 라헬을 자기 아내로 삼고 결혼하려고 했던 겁니다. 야곱에게는 레아를 자기 아내로 삼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고, 더욱이 레아와 라헬 두 자매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라반은 야곱이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 년을 그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동안에, 그 고장의 법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고 있다가, 결혼식을 올리는 날에, 야곱의 신방 안으로 얼굴을 가리운 레아를 들어가게 했고, 야곱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채로 신혼 첫날 밤을 레아와 보내게 된 겁니다.
여하튼, 얼떨결에 두 아내를 얻게 된 야곱의 결혼 생활은 첫 시작부터 평탄하고 행복하질 못했습니다. 야곱은 자기를 속여서 자기 아내가 된 레아를 평생 같이 살면서 용서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식을 낳지 못하던 라헬만 사랑하고, 오직 라헬만 자기의 아내라고 여기고, 레아와 그녀가 낳아준 아들들은 하급 식구들 취급을 했습니다. 야곱의 이러한 옹졸한 태도와 편애는 결국 레아의 아들들로 하여금, 라헬이 낳아 준 아들 요셉 곧 야곱이 유일하게 사랑하고 애지중지하던 아들을 죽일 마음을 품고 계획을 세우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의 두 아내가 서로 시샘을 하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라헬은 남편을 독차지하고 있었어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이미 남편에게 4 명의 아들을 낳아 준 언니를 시샘합니다. 그리고 언니에게 지지 않고 자기도 남편에게 아이들을 낳아 주려고, 자기의 몸종인 빌하의 몸을 빌립니다. 빌하는 야곱의 씨를 받고서 아들 둘을 낳습니다. 라헬은 첫 째 아들에게 단이라고 이름과, 둘 째 아들에게는 납달리라는 이름을 지어 줍니다. 그리고 납달리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는 “내가 언니와 크게 겨루어서, 마침내 이겼다”고 외칩니다.
이런 동생의 모습을 지켜 보던 레아는(레아는 네번 째 아들 유다를 낳고 난 후부터 태가 닫혀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는데) 자기도 동생에게 지지 않으려고, 자기의 몸종 실바를 남편에게 줍니다. 실바는 야곱의 씨를 받아, 레아 대신에 아들 둘을 낳아 주는데, 그들의 이름은 갓과 아셀입니다.
두 자매 또는 두 아내가 같은 남편에게 아들들을 낳아 준 실제의 동기는 오로지 서로가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낳은 아들들은 과연 한 아버지의 씨를 받았어도,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엄마들의 영향을 안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한 형제이니 같이 사랑하며 의좋게 성장해야 하는거지만, 실제로 단과 납달리 형제는 갓과 아셀 형제하고 적대감을 갖고 성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네 아들들은 본처에서 나온 아이들이 아니고, 몸종에게서 나온 아들들이었으니, 레아가 직접 낳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에게로부터 적잖은 괄시의 대상들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나중에 드디어 라헬이 요셉을 낳게 된 후에는, 아버지가 요셉만 귀여워하고 사랑하니까, 나머지 그 형들은 본처에게서 난 아들들이든 몸종들에게서 난 아들들이든 모두가 한 패가 되어서 요셉을 혐오하던 나머지 기회가 왔을 때 죽이려고까지 했다가, 르우벤과 유다가 나머지를 설득해서 죽이지는 않고, 먼 이집트로 팔아 보냈던 겁니다.
이러한 야곱의 가정은 결코 행복한 가정이라고 할 수 없는 집안이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 집안 식구들 중에는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화롭게 산 식구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서로가 질투하고 증오하고 빼앗고 또 싸워서 이기려고만 하는 식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가운데서도 야곱에게는 건강한 아들들 열 두 명이 생겼고, 마지막으로 귀여운 딸까지 생겼으니, 자식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 만합니다. 사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복들 중에 하나로써, 그것이 성취되어 가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약속 --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창세기 22:17).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도 반복하셨던 약속 -- “내가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약속을 이루어서,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고” (창세기 26:3-4).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도 반복하셨던 약속 --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창세기 28:14).
오늘 본문은 결코 아름답고 본이 될만한 가정의 모습이 아닙니다. 특히 자녀들이 태어나서 성장하기에는 너무도 살벌하고 험악한 가정이요 부모들의 모습입니다. 바로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거칠게 성장했던 열 두 아들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 이스라엘의 열두 조상들이었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었으며, 바로 이들의 혈통을 통해서 세상 모든 민족을 위한 구원자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나오셨습니다.
이를 보건대,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확신하게 됩니다.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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