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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전재균목사 (Pastor Chun)

22-01-16_창27_자녀로 택하신 후 징계하시는 이유

창세기 27 장을 마치면서, 이삭과 리브가, 에서와 야곱에 대해 다시 돌아보면서, 몇 가지 중요한 진리들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중요한 결론을 함께 내려보고자 합니다.


이삭


애석하게도 이삭은, 인생의 말로에서 집안 식구들에 의해 속임과 이용을 당하는 연약하고 가련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의 아내 리브가는 막내 아들 야곱과 같이 짜고, 눈이 어두워져서 볼 수 없었던 이삭을 속여서 에서가 차지할 복을 야곱이 가로채게 합니다. 아내와 막내 아들은 저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남편도 아버지도 속이면서까지 수중에 넣고야 마는 무섭고 믿지 못할 처자였습니다. 그나마 가족 중에서 믿고 가까이 했던 맏아들 에서는 한끼를 얻어 먹기 위해서라면 자기 장자권이라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내주는 한심하고 어리석은 인간이었습니다.


아마 이삭은, 이러한 가족들의 행동과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이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 실망과 허탈함을 느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좀 더 엄격하게 평가해본다면, 이삭은 자기 가족이 심각한 역기능 가정이 된 것에 대해서 다른 식구들을 탓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그 책임이 더 큰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첫째, 이삭은 쌍둥이 아들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생각과 소원을 고집했습니다.


이 사실이 그가 에서라고 믿고 야곱에게 축복한 내용에서 드러납니다. 특히 창세기 27:29에 보면, “여러 민족이 너를 섬기고, 백성들이 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너는 너의 친척들을 다스리고, 너의 어머니의 자손들이 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은 이삭이 자기 맏아들 에서에게 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한 축복내용입니다.


원래 이삭은 아내가 전해 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창세기 25:2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이것을 기뻐하지 않고, 형이 동생의 섬김을 받고, 가문의 명예와 재산을 상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삭은 비밀리에 맏아들을 불러서 그에게 이 모든 내용으로 축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지금 자기의 축복을 받고 있는 자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라는 사실은 몰랐던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서도, 그 말씀보다는 자기 생각과 소원을 고집하며, 지금 바로 자기 원대로 하고 있는 건데, 실제로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의 입으로 축복을 선언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정말 놀랍죠?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한 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하나님의 예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인생의 말로에서까지 자신의 생각과 소원을 고집하다가, 결국은 아내와 막내 아들에게 속임과 이용을 당하면서, 에서에게 주려고 했던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둘째, 이삭은 맏아들만 편애함으로써 아내와 막내 아들의 마음에 불만의 씨를 심었습니다.


이삭이 맏아들 에서를 편애한 이유도 전혀 타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에서를 사랑한 것은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에 맛을 들고부터였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직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 맛이 좋아서였습니다.


아들이 사냥해서 만들어주는 고기 맛 한 가지 때문에 그 아들을 사랑하고, 다른 아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아버지를 두 아들은 어떤 눈으로 보기 시작했을까요? 에서는 자기가 사냥해 온 것으로 맛있는 별미를 만들어서 드리는 한 그것으로 아버지를 얼마든지 주물럭거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키우게 되지 않았을까요? 또 야곱은, 아버지가 먹는 것 하나로 형은 사랑하고 자신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며, 그렇게 유치한 아버지를 존경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나중에 어머니와 함께 공범이 되어 아버지를 속이고 형에게 주시려고 했던 축복을 가로채는 일을 가책감도 없이 서슴치 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가 어머니의 제안을 받고서 잠시 주츰했던 것도,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죄책감이 들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다가 들통나면 아버지의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뿐이었습니다.


여하튼, 이삭은 인생의 말로에서 가족들의 존경보다는 이용대상으로 전락했던 가련한 가장이었는데, 이것은 그가 살아 오면서 스스로 뿌렸던 자신의 죄와 어리석은 행동의 쓴 열매들이었던 겁니다.



에서


에서의 경우는 다른 세 식구들의 문제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육신의 필요와 욕심만을 따라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장자권은 허기진 배를 한끼로 채우기 위해서 동생에게 내주었고, 아버지의 축복을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드리려다가 그 사이에 역시 같은 동생한테 빼앗겼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하거늘, 에서는 육신의 필요와 욕구를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영원한 영혼의 양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에서를 ‘속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한국어의 속되다는 말은, 고상하지 못하고 천하다는 의미와 평범하고 세속적이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원어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는 ‘거룩한 것의 가치를 경멸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에서가 속된 사람이었다고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경멸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에서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지요. 이런데도, 이삭은 에서가 하나님의 언약의 복을 상속받게 하려고 하였던 겁니다. 다행히, 이삭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언하신 대로 야곱이 그것을 계승합니다.


결국, 속된 사람 에서, 즉 하나님과 상관하지 않고 그분의 뜻을 경멸했던 에서를 하나님도 상관하지 않으시고 영원히 버리셨습니다. 그가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의 복을 상속받기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히브리서 12:17) 주시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러한 에서를 본으로 보여주면서, 우리 중에서도 “음식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와 같은 속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히브리서 11:16)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야곱


반면에, 야곱은 비록 탐욕과 거짓으로 형의 것을 다 빼앗고 훔친 도둑이었으나, 그렇게 하여 자초하게 된 심히 고달프고 서러운 타향살이를 하면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야곱이 그러한 변화를 보이기까지는 오랜 세월 하나님의 징계 밑에서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자기를 죽이겠다고 달려들고자 했던 형을 피하여 외가가 있는 하란으로 도망와서 살던 야곱은, 보호를 받으며 의지하고자 했던 외삼촌으로부터 오히려 수없이 속임을 당하고 이용을 당하며 억울함과 서글픔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만 했고, 그러는 가운데 외삼촌의 두 딸을 아내로 얻게 되어, 외삼촌과는 장인과 사위의 관계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인은 얼마나 인색하고 욕심이 많은지, 야곱의 아내가 된 그 두 딸 마저도 아버지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치를 떠는 사람이었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장자권과 상속권의 축복마져 다 빼앗아 가로책 도망 나온 야곱이, 이제는 자기보다 더 이기적이고 악독한 사람에게 걸려 들어서 속임 당하고 이용당하여 빼앗기게 되는 것이 어떤 체험인지를 자신이 직접 20 년 동안 톡톡히 당해 보게 된 겁니다.


그러다가 야곱은 장인과 처남들이 점점 자기를 혐오하는 태도와 안색을 보면서 불안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야곱더러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해주시면서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십니다. 그래서 야곱은 장인이 자기를 보내줄 것 같지도 않고, 또 보내준다 하더라도 자기의 재산은 다 빼앗아 챙긴 후에야 보내줄 것 같아서, 아내들과 모의하고는 기회를 보다가, 장인이 먼 거리로 일하러 간 틈을 타서 가족과 모든 재산을 챙긴 후에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렇지만 라반은 사흘만에 길르앗에 도착해 있던 야곱 일행을 따라잡았고, 예고도 없고 인사도 없이 도망쳐 나온 야곱을 질책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은 장인 때문이었다고 당당하게 설명하면서 오히려 라반을 책망합니다. 우리는 야곱이 말한 내용을 통해서 양심없고 탐심많아 속임수로 형의 것을 가로챘던 그가 어떻게 그 반대의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무려 스무 해를 장인 어른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 동안 장인 어른의 양 떼와 염소 떼가 한 번도 낙태한 일이 없고, 제가 장인 어른의 가축 떼에서 숫양 한 마리도 잡아다가 먹은 일이 없습니다. 들짐승에게 찢긴 놈은, 제가 장인 어른께 가져가지 않고, 제것으로 그것을 보충하여 드렸습니다. 낮에 도적을 맞든지 밤에 도적을 맞든지 하면, 장인 어른께서는 저더러 그것을 물어내라고 하셨습니다. 낮에는 더위에 시달리고, 밤에는 추위에 떨면서,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낸 것, 이것이 바로 저의 형편이었습니다. 저는 장인 어른의 집에서 스무 해를 한결같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두 따님을 저의 처로 삼느라고, 십 년 하고도 사 년을 장인 어른의 일을 해드렸고, 지난 여섯 해 동안은 장인 어른의 양 떼를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장인 어른께서는 저에게 주셔야 할 품삯을 열 번이나 바꿔치셨습니다” (창세기 31:38-41).


위에 야곱이 하는 말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가서 20 년을 사는 동안, 더이상 남의 것을 탐내어 훔치는 짓은 하지 않았다는 것, 자기 잘못으로 남의 것을 잃게 된 것은,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보충해주었다는 것, 비록 속임과 이용을 당하여 억울하고 고생스러웠어도 묵묵히 견디며, 자신이 약속한 것은 한결같이 지키며 성실하게 살았다는 말입니다.


라반은 야곱이 한 말 중에서 그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부인하거나 교정하려고 하지 않았으니, 야곱이 한 말은 사실 그대로 인겁니다. 이것은 야곱이 변했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죄악이 가져 온 고난과 고통의 시간들 속에서 그는 자기 잘못을 회개했던 겁니다. 야곱의 회개가 일시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고 진실하고 영구적인 회개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고백은 “저는 장인 어른의 집에서 스무 해를 한결같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새로 변한 모습으로 하루 이틀, 일 이 년도아니고, 스무 해를 한결같이 그렇게 살았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리브가


리브가는 하나님이 들려주신 계시를 통해 동생이 형보다 강할 것이며,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거라고 하신 말씀을 믿고 있었는데, 현실이 그것과 반대로 되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이 직접 뛰어 들어서 그것을 막으려고 야곱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속여서 에서가 받아야 할 복을 가로채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였지만, 리브가가 취한 방법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거나 인정하실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리브가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믿었으면서도, 그 성취가 자신이 예상한 방법 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게 보일 때, 이를 용납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인위적이고 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이루려고 하다가, 결국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하게 만들고, 야곱은 멀리 도망갈 수 밖에 없게 한 후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자기가 제일 사랑하던 아들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는 고통과 슬픔을 만들어내고 만 것은, 그녀의 시어머니인 사라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브람의 씨가 너무 오래동안 자기 몸에 생기지 않자, 더이상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방법으로 얻어 보고자 하갈을 이용하여 이스마엘을 탄생시킨 후, 관련된 모두에게 예상치 않고 상상도 못했던 크고 긴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를 만든 것과 흡사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창세기 27 장의 주인공들 네 사람(이삭, 리브가, 에서, 야곱) 중에서 하나님께서 상관하지 않으시고 버리신 사람은 에서 한 사람입니다. 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변함없이 보인 행동 속에서 그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그분의 뜻을 경멸하는 속된 사람이라는 것을 보였습니다. 그랬던 에서는 결국 자신의 장자권과 상속권 축복마저 동생에게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동생에게 빼앗긴 아버지의 축복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것을 구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에서가 그것들을 다시 얻고자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구하면서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 귀한 것들을 빼앗기게 되었던 건지에 대해서는, 즉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는 몰랐을 뿐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신의 문제의 근원을 알고 그것을 고치려고 하질 않고, 오직 빼앗긴 것을 다시 받으려고만 했으니, 이런 사람은, 혹 그것들을 다시 받아 쥔다 하더라도, 또다시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사람인 겁니다. 빼앗긴 것들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에서는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랬던 에서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실 필요를 못 느끼셨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창세기 27 장의 주인공들 중에서 3 명(이삭, 리브가, 야곱)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켜주시고 그분이 약속하신 대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또 세상 모든 민족을 위한 복의 그릇(근원)으로 택하신 뜻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하여도, 하나님은 이들의 어리석음과 고집스러운 죄의 행동에 대해서 눈감아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쓰고 고통스러운 열매의 맛을 보게 하셔서, 그들을 징계하시고, 마침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 다움을 갖추며, 의의 길을 걷는 사람들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복의 대상이요 그릇이라도, 그가 자신의 어리석음과 욕심을 따라 행한 것들에 대해 쓰고 고통스러운 열매를 맛보아야 하는 것은 면제받지 못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새롭게 변하고 성숙하도록 하는 징계가 반드시 따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변하고 성숙하는 것은 아닙니다. 징계를 통해서 자신의 미숙하고 어리석은 면과 죄를 깨닫고 하나님이 내리신 징계의 고통을 참아내며, 하나님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힘을 내어 따라갈 때 비로소 변화의 열매가 맺히는 겁니다.


“7 징계를 받을 때에 참아내십시오. 하나님은 자녀에게 대하시듯이 여러분에게 대하십니다. . . 10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징계하십니다. 11 무릇 징계는 어떤 것이든지 그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의의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똑바로 걸으십시오. 그래서 절름거리는 다리로 하여금 삐지 않게 하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히브리서 12:7, 10-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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