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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05_창26(1-11)_결함이 있는 자들을 택하신 이유

  • Writer: 전재균목사 (Pastor Chun)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Dec 7, 2021
  • 10 min read

본문은, “일찍이 아브라함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든 적이 있는데, 이삭 때에도 그 땅에 흉년이” (1절) 들었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흉년이 찾아 온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때만이 아니었습니다. 야곱 때에도 찾아왔습니다 (창세기 41:54; 42:1-2). 그 때는 오히려 더 극심하여, 이집트 땅까지 7년 간이나 연속해서 극심한 흉년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삼 세대가 살아오고 있던 가나안 땅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때부터 시작해서 매 세대마다 심한 가뭄이 반복되는 땅이라면, 이런 땅을 과연 복된 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하나님의 복은 처음에 이렇게 실망스럽게 꾸며진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반대로, 처음에는 매우 좋고 마음에 흡족한 것 같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확신했던 일이, 시간이 흐른 후에서야, 그렇지 않은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확실히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사람의 것과 다릅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선지자들도 어떤 일과 사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겼다가, 하나님께 교정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사무엘이 먼저 다윗의 맏형 엘리압의 늠름하고 용맹스런 모습과 큰 키를 보고서, 그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2 대 왕으로 택하신 사람이라고 단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사무엘기상 16:7).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데, 왜 나에게는 괴롭고 힘든 일들이 떠나지 않는 것일까?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허락해주실거라고 하셨는데, 아직도 내가 구해온 것들을 응답해 주시지 않아, 오늘도 내 마음이 여전히 안타깝고 불안하고 우울하게 놔 두시는 이유는 뭘까?


이러한 믿음의 갈등과 위기는 여러분과 저만 경험하는 것들인데,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들로 소개하고 있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삶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저들에게 약속하신 것들이 저들이 기대했던 모습과 생각했던 시간에 맞추어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저들도 똑같은 믿음의 갈등과 위기를 겪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도 때로는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며 위험한 처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약속하셨던 것들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애타도록 기다리다가 못해 자신들의 생각과 방법으로 이루려고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씨가 되지 못한다고 하시며 거절하셨습니다. 사실 여러분과 저의 삶에도, 하나님의 뜻과 때를 벗어난 행동 때문에 고통을 주고 받은 하갈들과 그 와중에 만들어낸 이스마엘들이 있지 않습니까? 두고두고 후회한 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가슴 아픈 열매들을 평생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되고 말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방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분이 정하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고 순종하며 기다리는 믿음을 갖도록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들은 종종 우리가 기대한 모습이나, 우리가 생각하고 소원하는 때에 찾아 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눈과 생각의 잣대를 완전히 버려야합니다. 하나님께은 신실하신 분이요, 우리를 위하여 최선의 것만을 예비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방법과 이루신 때가 우리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과 달라도, 그분을 신뢰하고, 기다리며,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과 항상 기뻐하는 마음을 키워가야 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이삭은 자기가 살고 있던 땅에 흉년이 들어서, 그랄 땅의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로 갔다고 합니다. 혹시나 그 곳에는 흉년이 덜 들어서 곡물들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을겁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가보니, 흉년으로 인해 그곳도 모두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삭은, 자기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자기도 가나안 땅을 떠나서 이집트로 내려가서 살 생각을 굳혔던 것 같습니다.


주님은, 이런 생각을 가진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어도, 그 땅을 떠나서 이집트로 가지 말고, “내가 너에게 살라고 한 이 땅에서 살아라. 네가 이 땅에서 살아야, 내가 너를 보살피고, 너에게 복을 주겠다.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2-3절) 고 명하고 약속하시는 것을 봅니다.


당시는 이삭 뿐만 아니라, 많은 가나안 사람들이 흉년을 피해서, 먹을 것이 풍족한 이집트로 이민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미주 한인들이 70 년 대에 한국의 혼란스러웠던 시국과 가난을 피해서 자녀교육과 살기에 좋은 미국으로 이민 올 때의 심정과 비슷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삭 때는 흉년이 심하게 든 땅에서 사는 것이, 우리가 떠나 올 때의 한국 사정보다 더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흉년이 끝나지 않는 한, 이삭과 그 식구들은 하나하나 굶어서 죽어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잠시 흉년을 피해서 이집트로 내려가서 살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돌아오려고 한 것은 현실적이고 현명한 처신이요, 어떻게 보면,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삭의 발걸음을 붙드시고, 흉년이 든 땅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하셨으니, 이삭의 갈등과 번민이 작지 않았을 겁니다. 이 명령은, 마치 흉년이 든 땅에서 곡물이 떨어질 때까지 살고, 그 후에는 더 먹을 것이 없어서 모두가 굶어서 죽을 수 밖에 없게 되더라도, 그 땅을 떠나면 안된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삭에게 이렇게 명하시면서 분명히 약속도 하셨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그래도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살펴 주시고, 복을 주실 것이며, 그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삭더러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가나안 땅에 머물라고 하신 것은 가뭄 속에서 굶어 죽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이삭과 그 후손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세 가지를 체험하고 얻도록 해주시기 위해서였고, 특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하셨던 것처럼, 이삭의 믿음도 훈련시켜서 성숙하고 강한 믿음의 소유자로 만드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아마 이삭도,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그 분의 명령 속에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자신의 소년 시절에 겪었던 끔찍한 사건의 교훈을 한 시도 잊었을 리가 없었을테니까요. 아버지와 함께 모리아 산으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이 예비해두신 어린 양을 번제물로 바치며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라 믿고, 아버지를 따라 갔다가, 사실은,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아버지가 실행하고 있는 중임을 알았고, 동시에 자기를 찌르려고 칼을 쥔 손을 위로 치켜 든 아버지를 하나님이 급히 막으시는 바람에 죽임당함을 면할 수 있었던 그 때, 하나님께서 자기 아버지에게 하시는 말씀을 자신도 함께 들으며,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하라고 아버지에게 명하신 것인지를 알게 되었던 그 경악스럽고도 경이로웠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의 마음과 그분의 의도를 이삭은 잊고 있을리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이해를 못하고, 불순종할 하나님의 명령을, 이삭은 아무런 거부 없이 순순히 순종하여, 흉년이 든 가나안 땅에 머무는 것은 조만간에 굶어 죽는 일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따르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랄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6절).


이삭이 하나님의 명령이 순종한 것은, 그가 모리아 산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하나님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경외하던 분이었는지를 자기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고, 하나님은 그분의 명령이라면, 단 한 번도 거부하거나 불순종한 적이 없고, 반드시 그리고 즉시 순종하던 자기 아버지를 얼마나 기뻐하시고, 그런 아버지에게 어떠한 복을 얼만큼 주셨는지를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사람은, 그분의 명령은,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순종함으로 그분을 절대적으로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게 행동하는 아버지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복 중에서 가장 귀한 복을 내려주시는 것을 보고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이 물려 받은 보배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아버지의 신앙관이요 마음이었던 겁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먼 이삭인지라, 하나님과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무지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그가 다른 어떤 생각과 의심에도 틈을 주거나, 주저하지 않고 즉각 행하여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은 무조건 순종하여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그렇게 순종하여, 그랄 땅에 그대로 머물렀다고 해서, 그 땅에 머물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 위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도 그 마음에서 완전히 떼어 버렸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실 중에 하나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모두가 경험하고 또 안고 있는 모순된 모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순종하면서도, 위험하고 불안한 현실을 직면하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함을 갖기 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붙들린 사람의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모습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랄에 머물렀지만, 그 곳에 있다 보니까, 그 곳 남자들이 자기 아내 리브가에게 자꾸 관심을 갖고 물어 오자,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삭은, 리브가가 예쁜 여자이므로, [그리고 두 사람은 20 년 이상 나이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 사람이 부부사이라는 생각을 갖지 못했던 겁니다] 그 곳 사람들이 리브가를 빼앗으려고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7절). 그래서 이삭은 사람들이 그렇게 물어 올 때마다 리브가는 자기 누이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사람들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와 결혼하고자 하는 남자가 생기면, 그에게 자기 아내를 내어 줄 수 밖에 없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결국 자기 아내는 그 남자와 간음죄를 짓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삭이 취한 결정과 행동은 분명 부도덕하고 불의한 일입니다. 자기 목숨을 잃지 않으려고, 불의한 방법을 택한 이삭의 모습은 의인의 모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주요 목적이었던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 (창세기 18:19) 과 정반대되는 악하고 부끄러운 행위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이삭을 어떻게 보시나요? 아버지 아브라함이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실패하였기 때문일까요? 그리고 이제와서 잘 보니까, 이삭의 본심이 아주 이기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남편이요 인간이라고, 정죄하며 비판하게 되시나요?


하지만, 우리가 정직하다면, 이삭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삭을 보노라면, 마치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으시나요?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라, 그분의 명령과 뜻을 순종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불안하고 두려운 현실들을 접할 때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있게 의의 길을 가기보다는, 손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불의와 타협할 때가 있지 않나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이렇게 크고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는 여러분과 저, 그리고 이삭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려고 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이삭보다 더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삭은 그랄 땅으로 오기 전부터 자기 아내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려고 계획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랄에 머물라고 하셔서, 그 곳에 머물다 보니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나서야, 두렵고 불안한 생각이 들자 당황하면서 어떨결에 거짓말로 대답하게 된 것이고, 한 번 공중 앞에서 말한 것을 바꾸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그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게 된 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 고향을 떠나서 타국 땅에서 외국인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자기 아내와 함께 계획하고 정한 일이었던 것을, 그가 그 당시 그랄 왕 아비멜렉 1 세에게 한 말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사람들이 아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나의 아내를 빼앗으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씀드리면, 나의 아내가 나의 누이라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내는 나와는 어머니는 다르지만 아버지는 같은 이복 누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버지 집에서 떠나서 여러 나라로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부탁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으로 가든지, 사람들이 나를 두고서 묻거든, 그대는 나를 오라버니라고 하시오. 이것이 그대가 나에게 베풀 수 있는 은혜요' 하고 말한 바 있습니다” (창세기 20:11-13).


이삭의 거짓말은, 미리 계획한 것이 아니지만, 그 아버지 아브라함은 미리 계획한 대로, 예상했던 상황을 만날 때마다 거짓말을 하여 언제든지 자기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내어 주고, 자기의 목숨을 건지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오히려 자기 아들 이삭보다 그 점에서 도덕성과 인격결함이 더 심했던 겁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은 어째서 이런 심각한 결함이 있던 아브라함을 복을 주시려고 그리고 온 세상 모든 민족을 위한 복을 담아서 주실 그릇으로 택하신 것인지, 그 이유가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만일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이었다면, 이러한 아브라함의 속을 다 들여다 보고 알고 나서도 그를 우리가 사랑하고 복주고 귀하게 쓸 그릇으로 택하였을까요? 아마 우리였다면, 아브라함보나는 욥을 택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욥과 아브라함은 동시대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s Study Bible 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주전 2166 년부터 주전 1991 년까지 살았고, 욥은 주전 2100 년부터 주전 1900 년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욥보다 66 살 연상이었고,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이 두 인물 중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의 씨를 통해서 땅의 모든 민족이 구원의 복을 받게 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럼, 아브라함이 동시대 인물인 욥보다 더 도덕성이 높고, 영성이 좋아 더 신뢰할만한 인물이어서 그러실걸까요? 이를 위해서 아브라함과 욥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욥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욥기 1장에서 하나님이 직접 그를 묘사한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1 우스라는 곳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2 그에게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고, 3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겨릿소가 오백 쌍, 암나귀가 오백 마리나 있고, 종도 아주 많이 있었다. 그는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였다. 4 그의 아들들은 저마다 생일이 되면, 돌아가면서 저희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세 누이들도 오라고 해서 함께 음식을 먹곤 하였다. 5 잔치가 끝난 다음날이면, 욥은 으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려고, 자식의 수대로 일일이 번제를 드렸다. 자식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라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죄를 지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잔치가 끝나고 난 뒤에는 늘 그렇게 하였다. 욥은 모든 일에 늘 이렇게 신중하였다.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주님 앞에 섰는데, 사탄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7 주님께서 사탄에게 ‘어디를 갔다가 오는 길이냐?’ 하고 물으셨다. 사탄은 주님께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오는 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8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 보았느냐? 이 세상에는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말씀으로 칭찬하시며 높이 평가하신 인물이 욥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러한 욥을 능가했던 영성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었던 인물이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욥보다는 아브라함을 택하신 걸까요? 한 번 아브라함의 배경에 대해서 기록한 여호수아서 24장 2-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2 그 때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비 데라를 비롯한 너희 조상은 유프라테스 강 건너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 3 그러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건너에서 이끌어 내어, 그를 가나안 온 땅에 두루 다니게 하였으며, 자손을 많이 보게 하였다.’”


이 말씀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자기 가문이나, 자기가 자라온 환경에 대해서 자랑스러워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려고 택하여 부르시기 전에는 조상 대대로 섬기던 “다른 신들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한 우상도 아니고, 여러 우상들을 섬기던 사람이 바로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아브라함의 무얼 보시고 인류 역사에서 아무도 받지 못했고, 앞으로도 받을 사람이 없는 그 놀랍고 엄청난 복을 주실 대상으로 삼으신 걸까요? 위의 3 절에 의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택하신 이유와 그 자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리할만한 이유와 자격이 전혀 없던 사실만 2 절에서 언급한 후, 3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아브라함을 불러 택하셨다고 하셨으니, 복을 받을 만한 이유와 자격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고 갖고 계시는 그 이유만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인데,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은 은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격과 조건을 따져서 하나님이 사람으로 택하시고 부르시는 것이었으면, 아브라함은 욥의 발끝도 따라오지 못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을 택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 오게 해주시고, 그분의 자녀로 삼아주신 이유와 똑같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나요?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은 정죄와 벌 뿐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만한 존재들이 아니라, 그분의 진노의 대상들이었다고 바울은 에베소서 2 장에서 말하면서, 그러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뿐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도 그 가문이나 자신 속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을만한 이유와 자격이 없는 것 뿐만 아니라, 자랑할만한 것이 먼지 만큼이라도 전혀 없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여러분과 저에게도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과 구원을 받고 그분의 자녀와 하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에 대해서 우리가 자랑할만한 공로나 자격이 전혀 없으니, 우리 모두는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할 일과 그러한 은혜를 우리에게 내려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모든 영광을 드리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거지요.


“1 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2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4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5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7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1-9).


오늘 본문은, 이삭이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부도덕하고 믿음도 약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아버지 아브라함의 복과 씨를 물려 받아서 먼 훗날 온 세상의 구원자로 태어나실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인격적 결함이 더 컸던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동시대 사람 욥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그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아브라함을 자기 사람으로 택하신 것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과 또 그분의 복을 받고 그분의 뜻을 이루어갈 그릇으로 택함을 받은 것에 대해서 자기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과 저 역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과 그분의 영원한 나라의 백성이 되어 그 나라를 상속받게 된 것에 대한 공로와 자격은 우리 속에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신앙 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증가하며 성숙해가는 믿음과 지혜, 그리고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우리의 공로와 열심과 노력으로 여기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 만을 자랑하고 찬양하며, 우리 자신은 끊임없이 낮추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도 끊임없이 모방하며 실행하는 것만이, 받을 자격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한없이 끝없이 받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마땅히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본래부터 선이 무엇인지 모르고, 의롭고,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그들과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사랑해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에베소서 1:4) 하셨기 때문입니다.


“9 . . .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9-10).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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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자기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은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는 말을 듣고 급히 짐을 챙겨서 아버지 집을 떠나서 먼 밧단 아람 땅에 계신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지금까지 편함과 풍요와 행복을 제공해주었던 아버지 집이, 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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