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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4_창25(1-11)_받은 목숨대로 다 산 사람

  • Writer: 전재균목사 (Pastor Chun)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Oct 25, 2021
  • 7 min read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175 살에 생애를 마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래 그 조상들과 함께 다른 신들을 섬기던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을 섬기기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는 75 살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서 100 년을 하나님을 따르며 섬겼던 겁니다. 100 년이라는 기간은, 한 생을 살기에도 그리고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섬기기에도 연약한 육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무리스러울만큼 길고 긴 시간입니다. 8절에서 아브라함은 “아주 늙은 나이에 기운이 다하여서,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 말이 이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8절은 아브라함이 죽었다는 것을 말하면서, 우리의 초점을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두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점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죽었느냐보다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있어야 하는 거지요. 그러면, 8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살고나서 죽었다고 하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자기가 받은 목숨대로 다 살고, 아주 늙은 나이에 기운이 다하여서,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나, 조상들이 간 길로 갔다” 고 하지요? 아브라함은 모든 연로한 노인들이 육신의 힘이 다해서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었지만, 아브라함이 그들보다 다른 점은 육신의 힘이 다 빠져서 숨을 거둘 때까지, 아브라함은 “자기가 받은 목숨대로 다 살고” 세상을 떠나갔다는 겁니다.


“자기가 받은 목숨대로 다 살고” 라는 말은, 원어(히브리어)로는 형용사 한 마디인, ‘싸베이어’ 라는 말로써, 그 의미는 더 넣을 것이 없도록 꽉 채워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물릴정도로 배부르게 먹고 나면, 더이상 그 어떤 음식도 보기 싫을 정도가 된 상태를 연상해 보시면, 이 단어의 뜻을 좀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아브라함이 숨을 거둘 때, 그의 마음에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만큼,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한 상태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육신과 세상적인 면에서 더 갖고 싶은 것이 없을만큼 다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부유하도록 복을 주신 사람이지만, 바로 이것 때문에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그의 마음이 만족하고 행복했던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는 것은, 그가 태어난 목적,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를 만드셔서 세상에서 175 년 간을 존재하도록 하신 목적을 온전히 이루고 눈을 감을 수 있었던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그가 숨을 거둘 때, 과연 신체적으로 편안하고 아무런 고통이 없었을까요? 175 살 노인의 쇄약해진 몸 상태가 과연 그러했을까요? 아니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의 마지막 나날들은, 심히 늙고 쇄약해진 몸을 스스로 가누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겁니다.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 닳아 버린 뼈 마디들 마다 생긴 관절염으로 인해 생긴 고질적 통증들과 뒤틀려졌을 손가락 마디들의 불편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마도 노인병들로 인해서 여러가지로 불편하고 아픈 몸을 갖고 마지막까지 살았을 거라 생각되지 않으세요?


그러나, 그렇한 육신의 불편함과 고통들은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 충만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평안과 행복만큼은 먼지의 크기 만큼이라도 빼앗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어느 것과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진정하고 영원한 기쁨과 만족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아브라함의 마음에 가득했던 것은, 그를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부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토록 귀한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영원토록 누릴 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 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기 전까지, 그 아비와 그 조상들이 해오던 대로 다른 신들을 섬겼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랬던 그를 용서해주시고, 그로하여금 참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섬기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시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크고 귀한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되는) 복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브라함에게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치지 않는 감격과 감사였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 순간까지, 비록 아브라함의 몸은 노약하여 기운이 다 빠지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상태였어도, 그의 마음 만은 더할 나위 없이 평안하고 기쁘고 만족스러웠던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마음은,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다 이루었다” 고 외치신 한 마디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마지막 외침은, 세상 모든 죄를 짊어지고 그 댓가를 자신의 고난과 죽음으로 치루어야 하는 사명을 자기에게 맡기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서 완벽하게 마치고, 비록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순간이었지만, 만족가득한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보며 외치는 아들의 사명완수 보고였던 겁니다.


길고 오랜 세월을 살았던 아브라함과 짧고 분주한 인생을 살았던 예수님의 모습은 천지 차이가 나는 모습이었어도, 이들의 공통된 점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의 마음 상태가 같은 겁니다. 둘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에 응답하여 그분을 사랑하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까지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그분께서 맡기신 삶과 사역을 그들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신실하게 행하고 이루고, 자신들의 마음에는 더 바랄 것이 없는 기쁨과 평화와 만족을 가득 담고 눈을 감을 수 있던 분들이었습니다.


두 분 다 그렇게 마지막 숨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각자가 하나님이 주신 삶에 신실했고, 자신이 받은 사명을 끝까지 신실하게 행하였기에 가능했던 거지요. 다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마지막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할 때,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되는 것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눈을 감게 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그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인지에 초점을 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가를 제대로 깨닫고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어떤 존재로 만드셨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 26절부터 28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고자 하셨을 때, 그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육하고 번성하여 세상 모든 곳에 사람들이 있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행복은 물론,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생물도 다같이 건강하고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풍요롭고 유익한 세상이 되도록 땅을 잘 가꾸고 관리하는 일과, 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생물이 그들의 독특한 모습과 성격을 막힘없이 드러내며 그들을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를 해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그들을 보살피며 다스리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보살피며 다스리는 일은, 사실 하나님의 영역인데,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사람을 지으셔서 사람에게 맡길 계획을 세우셨던 겁니다. 그리고 이 역할이 하나님의 영역인만큼, 하나님께서는 이 역할을 맡을 사람을 그분을 대표할 존재가 되게 하기 위하여, 사람을 지으실 때, 그분의 “형상을 따라서”, 그분의 “모양대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형상과 그분의 모양은, 만물과 모든 생물이 인식하고 순종하게 하는 요소인 겁니다. 이것은 어떤 생물도 저항하거나 당해낼 수 없어, 순종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것은, 모든 생물이 신뢰하고 따르기를 기뻐하는 사랑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하나님을 깊이 닮은 형상과 모습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따랐을 때, 사람에게서 드러나야 할 하나님의 형상과 그분의 모양이 치명적인 훼손을 당하고 말았고, 그때부터 땅은 그것을 경작하여 먹을 것을 풍요롭게 얻고자 하는 인간에게 인색함을 보이기 시작했고, 곡물들을 내주면서도 가시덤불과 엉겅퀴도 나게해서 인간이 힘들어하고 고통을 당하도록 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창세기 3:17). 뿐만 아니라, 인간의 다스림을 복종하도록 만들어졌던 짐승들도, 인간을 물고 죽이기 시작했고, 모든 생물이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존재하고 투쟁하는 것들로 변질되어 저들을 지으신 조물주의 창조 계획과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것들이 되고 만 겁니다.


가장 한탄스러운 것은,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드러내기는 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지고, 마음도 어두워진 어리석은 존재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말은 지능을 상실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능은 시대가 갈 수록 눈부시게 성장하여 고도의 기술문명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어리석은 존재들이 되었다는 말은, 그들을 지으신 조물주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고, 더나아가서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것과 생물을 지으신 조물주의 뜻과 의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뜻과 생각 그리고 자신의 욕구와 욕심을 따르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을 깨닫지 못하는 존재들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모습은 모든 만물과 생물들의 눈에 하나님의 형상과 그분의 모양을 드러내는 모습이 아니라, 불의, 악행, 탐욕, 악의, 시기, 살의, 분쟁, 사기, 적의로 충만한 무섭고 추하고 경멸스러운 형상과 모양만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인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이렇게 추하고 악한 모습으로 타락하고 변질되버린 인간을 다시 거듭나게 하여, 창조 때 인간에게 주셨던 그분의 형상과 그분의 모양을 인간 속에 다시 회복하게 해주기 위함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29-30).

  • “흙으로 빚은 그 사람[타락한 아담]의 형상을 우리가 입은 것과 같이, 우리는 또한 하늘에 속한 그분[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49).

  • “우리는 모두 너울[타락하고 추한 죄인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주님[죄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고린도후서 3:18).

  • “여러분은 옛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골로새서 3:9-10).

  •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를 참모습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깨끗하신 것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 (요한일서 3:2-3).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심을 받아서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람은 왕족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외에 그 누구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을 다스리고 보살피는 왕족들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듭나게 하신 것은, 치명적 훼손을 입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에게 다시 회복해주셔서, 다시 왕의 역할을 행할 자들이 되게 하시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가르침 중에는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드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자들이 될거라는 말씀들이 있는 겁니다.


  • “이 말씀은 믿을 만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었으면, 우리도 또한 그분과 함께 살 것이요, 우리가 참고 견디면, 우리도 또한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요” (디모데후서 2:11-12).

  •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

  • “주님께서 그들[주님의 피로 사신 모든 믿는 사람]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가 되게 하시고,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10).


자, 이렇게 성경이 우리에게 확인해주고 있는 우리의 새로운 정체,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 되었는지를 알게 된 이상, 여러분과 제가 여전히 추하고 악한 죄의 노예들로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제가 앞으로 올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지니고 예수님과 함께 만물을 다스릴 사람으로 예정되었다면, 지금 이 땅에서--혼잡스럽고 어렵고 괴로운 우리의 현실 속에서--부터 그러한 사람으로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를 위한 여러분과 저의 유일한 모델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성경은 거듭 강조하며 끊임없이 우리의 눈을 그분에게로 돌리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믿는 우리 모두에게 바라시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모두 그분을 믿기만 하지 말고, 그분을 모방하고 순종하며 그분을 닮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성경이 의미하는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머리로만 기억하는 자들이 아니라, 스승의 마음과 삶을 닮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은 제자들이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이 확실하게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의 뜻임을 아래 구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요한복음서 13:14-15).

  •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서 13:34-35).

  •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로마서 8:29)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에 충실하게 헌신한 자들이라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 외칠 수 있으셨던 ‘다 이루었다’를 우리도 할 수 있게 되지 않겠을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부터 외롭고, 두렵고, 고생스러운 외국인의 나그네 삶을 집 한 채도 장만하지 못하고 살다가 생을 마쳐야 하는 고달픈 믿음의 여정 속에서 자신의 모든 인간적 생각과 욕심의 꺼풀들을 끊임없이 벗어던져가며, 하나님을 순종하고 닮아가는 삶에 정진했던 아브라함이, 감격과 감사와 기쁨과 만족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모델 삼아 우리가 가야 하는 믿음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며 하나님을 가까이 따르다 보면,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복의 열매들로 가득 찬 마음으로 눈을 감고, 그분의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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