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26_창24(16-27)_하나님께 기쁨이 된 아브라함의 종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Sep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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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의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을 주인의 고향 땅에가서 그 친족들 가운데서 찾아 데리고 와달라는 명과 부탁을 받고, “주인이 준 온갖 좋은 선물을 낙타” 열 마리에 싣고, 젊고 힘있는 장정들도 여러 명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을 떠나서 한 달 간 걸린, 멀고 험한 길을 거친 후, 드디어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이 살고 있는 아람나하라임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이 도착한 시간은 저녁 해가 지는 때였는데, 열 마리의 낙타를 비롯한 모든 일행도 지쳐 있었습니다. 마침 이들이 다다른 곳은, 지치고 갈한 이들의 목을 시원하게 축여줄 수 있는 한 우물가였습니다. 모두의 눈은 노종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먼저 물을 마시고 나야, 저들도 물을 마시고, 낙타들에게도 물을 마시게 해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노종은 물을 마실 생각은 않고, 머리를 숙여 기도를 하고 난 후에, 그 곳으로 물을 길러 나오는 여인들 중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 노종에게는 자신의 지친 몸과 타는 목의 갈증을 물로 해소하는 것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겁니다. 그가 우물가에서 물을 마시기 전에 먼저 간절히 찾고 구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그곳까지 인도하신 목적을 이룰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습니다.
과연 아브라함은, 중대한 일을 맡길 만한 성숙하고 성실한 종을 잘 선택했던 겁니다. 주인이 명하고 부탁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필요와 편리는 뒷전으로 밀어내고, 주인의 일을 먼저 신속하고 완벽하게 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고 있는 이 종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과 저의 귀감입니다.
아브라함의 노종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45-47의 비유에서 말씀하신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의 실례(實例)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누가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주인이 그에게 자기 집 하인들을 통솔하게 하고, 제 때에 양식을 내주라고 맡겼으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종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과 역할들이 있습니다. 부모의 역할, 자녀로서의 역할, 부부간의 남편 또는 아내로서의 역할, 선한이웃 으로서의 역할, 직장 또는 일터에서의 임무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등, 이 외에도 각각 독특하고 다양한 임무와 역할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과 역할들을 대하는 여러분과 저의 마음과 태도는 과연 어떠한지 이 시간을 통해 잠시라도 진지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들 중에서, 우리에게 즐거움과 이익이 되는 일들도 있지만, 우리가 힘들어하고, 싫어하고, 혐오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해야 할 때, 우리는 이러한 일들까지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해주신 것이고, 맡기신 거라는 생각과 믿음을 가지려고 하기보다, 내가 이런 일을 해야만 하도록 만든 사람과 환경과 시대를 탓하지는 않나요?
성경적으로 보면, 사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과 맡은 역할들은 모두가--내가 즐거워하는 일이든, 싫어하고 혐오하는 일이든--하나님께서 나와 그분의 섭리를 위해, 나에게 허락하신 일들입니다. 물론, 그것들 중에는, 우리가 우리의 어리석음과 욕심을 따라서 심은 대로 거두고 있는 것들도 포함되었지만, 이것들까지도,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들임을 믿고, 겸손함과 회개하는 마음으로 임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런 고통을 맛보지 않고서는 그 고통을 가져 온 죄를 혐오하고 다시는 그 죄와 타협하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가 3 장에서 죄를 짓고, 그 죄의 고통스러운 값을 치루며 신음하고 있던 유다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격려했습니다. “38 궂은 일도 좋은 일도, 가장 높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셔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 39 어찌하여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죄값으로 치르는 벌을 불평하느냐? 40 지나온 길을 돌이켜 살펴보고, 우리 모두 주님께로 돌아가자.”
연관되는 생각들이 떠올라서 말씀을 하다보니, 원래 주제보다 조금 다른 포인트로 빠졌습니다. 이제 다시 본문의 아브라함의 종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 가로 돌아옵니다. 자신의 필요와 편리를 채우는 것보다, 주인이 부탁한 일을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로 여기고 이에 희생적으로 헌신하는 이 노종의 모습은, 그 주인인 아브라함이 기뻐했을 것은 당연하고,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바라시고 기대하시는 종의 마음과 모습입니다. 이런 종은 하나님께서 더 많고 귀한 것들을 맡기실 수 있는 종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귀담아 듣고 또 마음에 담고 명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선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써, 그분께서 맡기신 일들을 당연히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시고 정해주신 역할과 일들을 성실하게 하고자 헌신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들어갈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우리에게 맡기실 더 크고 많은 일들을 맡아서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자질을 쌓아가는 훈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의 실례(實例)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누가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주인이 그에게 자기 집 하인들을 통솔하게 하고, 제 때에 양식을 내주라고 맡겼으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종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마태복음 24:45-47).
아브라함의 노종은, 자신의 지친 몸과 바싹 탄 목을 축이기 위해 물부터 마시기를 거부하고, 자신과 일행을 이 먼 곳에까지 보낸 자기 주인의 부탁과 명을 제대로 잘 이룰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부터 하나님께 합니다. 우리는 이 종의 기도 내용 속에서도, 그가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고, 오로지 자기 주인과 그의 소원을 중심에 두고 구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주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오늘 일이 잘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 . 이것으로써 주님께서 저의 주인에게 은총을 베푸신 줄을 알겠습니다.”
주인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참된 종의 마음입니다. 주인이 부탁하고 맡긴 일을, 자기의 생각과 자기 중심적으로 그리고 자기를 자랑하거나 내세우기 위하여 하려한다면, 참된 종이라 할 수 없겠지만, 아브라함의 노종은, 자신의 필요와 편리도 뒤로 밀어내고, 주인이 바라는 것을 얻게 해주십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으니, 참된 종의 귀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의 극치를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에게서 봅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던 중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셨는데, 낮 열두 시 정도 되어서, 한 우물가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비롯해서 모든 제자들이 다 지치고 배도 고파서, 주님이 우물가에 앉아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점심식사를 사러, 가까운 동네에 갔습니다. 그 때 주님은 물을 길으러 온 한 사마리아 여인을 전도하셨는데, 이 여인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인 것을 깨닫고, 자기 동네 사람들도 이분을 믿게 하려고, 동네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사 갖고 온 점심을 주님께 드리면서, 잡수라고 했을 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 . .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뜻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구하고,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는 일을 의미하신 거였습니다. 배가 고프고 지친 몸을 위해, 제자들이 갖고 온 빵을 먹는 것보다 예수님에게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예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행하고 이루셨는지,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6-8절)
다시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서 자기 주인 아브라함을 위해서 은총을 베풀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 시간, 그 우물가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위한 아내로 정하신 여인을 보여달라고, 담대하게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였는데, 두 가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자기가 한 소녀에게 물 한 모금만 마실 수 있게 해달라고 할 때, 그 소녀가 그렇게 해주겠다고 말하고, 둘째는, 그 소녀가 자원해서 낙타들에게도 물을 주겠다고 말하면, 그가 바로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내로 정하신 여인인 줄로 알겠다는 거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종이 이렇게 기도를 하는 것을 미처 마치지도 않았는데,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우물에 도착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사람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진리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마치기도 전에 이미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진리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우리가 구하는 것을 이미 다 준비하신 후, 그것을 우리가 원했던 때보다 더 빨리 주시길 원하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하여 구하는 것은 물론이요, 우리가 선호하는 것까지도 거절하지 않으실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구한데로만 주시기보다 더 좋고, 더 많고, 더 속히 주고자 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정말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너희 가운데서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마태복음 7:9-11)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여러분과 저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십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며, 그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가 들어주겠다.” (이사야서 65:24).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과 저는 놀라운 복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데도, 우리가 우리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날마다 나와서 우리의 필요한 것과 소원하는 것들을 구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부지런히 구해서 얻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과 제가 이러한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고자 그분을 더 의지하고 순종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더 성실하게 살고 따르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맛보며, 더 깊고 친근한 교제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 .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요한복음서 14:21, 23)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서 15:9-12)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이와 같은 삶을 추구할 때, 우리의 마음과 행동은 점점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되어 갑니다. 이러한 길을 가면서, 우리가 누리게 되는 특권과 복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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