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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9_창22장_하나님이 믿고 기뻐하시는 사람

  • Writer: 전재균목사 (Pastor Chun)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Aug 29, 2021
  • 6 min read

오늘 본문은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 . . 번제물로 바쳐라”고 하셨는지를 말해줍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물로 받고 싶어서도 아니고, 아브라함으로부터 그의 외아들을 빼앗고 싶어서도 아니라,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소와 양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으니, 아브라함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그동안 믿고 따르며 섬겨온 여호와라는 하나님이 결국은 인간의 제물을 요구하는 무시무시한 신이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을거라 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순간에 어떻게 하실거라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믿고 기대했던 하나님의 모습과 너무도 다를 뿐 아니라, 무섭고 잔인한 신이라고 생각이 들어, 더 나은 종교를 찾아 떠나시지는 않을까요?


더군다나,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인간 번제물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사라가 낳아준 아들이 이 아들 외에 더 없었습니다.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은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셨으니, 아브라함에게는 어떤 생각이 들었겠을까요? 아마도, 여호와라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질투하고 욕심을 내어 그것을 빼앗아 가는 신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또하나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셨을 때 그의 나이가 75 살이었습니다. 아내의 나이는 65 살이구요. 불행하게 이때까지도 두 사람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임신을 하지 못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부부를 부르신 순간부터 그들에게 자녀를 주셔서, “큰 민족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후 25 년이 지난 후 드디어 하나님은 사라가 아브라함의 씨앗을 받아 아들을 낳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 아들이 이삭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라가 나아 준 이삭과 언약을 세워서, 그것이 이삭과 그의 뒤에 오는 자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셔서, 그들이 하나님이 전에 약속하신 대로 큰 민족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다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바로 이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시는 겁니다.


약속을 잘 지켜오시던 하나님이, 이제는 마음을 바꾸신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있던 아브라함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그동안 체험하며 알아 왔던 하나님이 언제든지 생각과 태도와 마음을 바꾸기도 하는 변덕스러운 신이었단 말인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었을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자기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언제부터 행동으로 옮겼는가에 조명등을 비추어 줍니다. 그리고 한 번 시작한 그의 행동은 하나님이 명하신 곳으로 가서,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려고 제단 위에 올려 놓고 그를 향하여 칼을 내리 꽂으려는 순간까지 단 한순간도 주저하거나 멈춘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자가 아들을 잡으려고 내려오는 아브라함의 손을 막았을 때서야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따라 움직이던 아브라함의 행동이 멈추었을 뿐입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에게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자기의 사랑하는 외아들까지도 아끼지 않고 실제로 드린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쇼를 부린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기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번제물로 바치기로 마음을 정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막지 않았더라면, 이삭은 정말 피를 흘리고 죽어서 제단 위에서 번제물로 불살라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해할 수 없는 이런 “미친 짓”을 한 순간도 주저하거나 지체하지 않고 행할 수 있었을까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정말 믿었기 때문에 그리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요?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오랜 세월 따르며 동행해 온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마음과 성품을 갖고 계신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따라서 이렇게 미친 짓을 하라고 명하시는 것은, 그분께서 아브라함이 정말 그분을 믿고 있는지를 시험해보시려는 것임을 눈치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단 위에 올려 놓고 번제물로 잡으려는 흉내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랬던거라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쇼를 위한 연극에 불과했을 겁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실제로 끝까지 실행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칼을 들고 아들을 죽이려고 한 것도, 그렇게 할 것처럼 쇼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을 실제로 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쇼가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자가 황급하게 그의 손을 막아야 했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은 반드시 그리고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것임을 믿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그 말씀대로 약속의 아들이요 언약의 아들인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실제로 죽인다면, 그동안 하나님이 말씀해오셨던 약속들은 더이상 믿지 않고 포기했던걸까요? 만일 그러했다면, 하나님은 말씀을 바꾸시는 분이되고, 그런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때때로 바꾸어야만 해야 할겁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당면했던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과 믿음을 갖고 행동했는지를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습니다. 더구나 약속을 받은 그가 그의 외아들을 기꺼이 바치려 했던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삭에게서 네 자손이라 불릴 자손들이 태어날 것이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되살리실 수 있다고 아브라함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7-19)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은 반드시 복종해야 하는 것을 믿고 있었던 아브라함이었기에, 그는 그 명령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과 심각한 모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종하기로 마음을 정했던 겁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지 않고 지키시는 분이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기에, 아브라함은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기의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죽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죽은 이삭을 다시 살리실 거라고 확신했던 겁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외심을 입증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부터 확인하고 싶어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 . 내가 친히 맹세한다. 네가 이렇게 너의 아들까지,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너의 자손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2, 16-18절)


아담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분의 명령을 불순종한 후부터,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는 사람은 그분을 진정으로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과 법도를 지키며, 그분의 명령을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나오실 때에, 길을 가로막고 대적했던 아말렉을 후에 벌하시기 위하여 사울에게 명하시기를 아말렉을 쳐서 그에게 달린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든 하나도 살리지 말고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였는데, 문제는 아말렉 왕인 아각과 “양 떼와 소 떼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것들과 가장 기름진 짐승들과 어린 양들과 좋은 것들은, 무엇이든지 모두 아깝게 여겨 진멸하지 않고, 다만 쓸모없고 값없는 것들만 골라서 진멸하였”습니다. 사무엘이 이를 책망하고 꾸짖었을 때, 사울의 대답은 좋은 것들과 기름진 짐승들을 죽이지 않고 약탈해 온 것은, 그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였다고 이유를 대었습니다. 그 때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은 사울을 버리셨다고 선언합니다.


“주님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을 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무엘기상 15:22-23)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면서, 주님께서 더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쳤습니다.


시편 81 편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얻고 애굽에서 구출되어 나왔던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행하다가 결국 고통스러운 징계를 자초하며 저들의 것이 되었을 복을 놓쳐버리고 만 일에 대해서 슬프게 회상하시며 가슴아파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너희의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마음껏 먹여 주겠다' 하였으나, 내 백성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은 내 뜻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고집대로 버려 두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게 하였다. 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내 말을 듣기만 했어도, 내가 가라는 길로 가기만 했어도, 나는 당장 그들의 원수를 굴복시키고, 내가 손을 들어서 그 대적을 쳤을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은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을 것이며, 이것이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름진 밀 곡식으로 너희를 먹였을 것이고, 바위에서 따 낸 꿀로 너희를 배부르게 하였을 것이다.” (10-16절)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 다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아, 들어라. 내가 너에게 경고하겠다. 이스라엘아, 나는 네가 내 말을 듣기를 바란다” (8절) 고 하시며, 자기 백성이 그분을 진정으로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과 명령을 복종하는 삶에로 돌아오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시편 95 편에서도 경고하시기를 그분께서 말씀하시고 명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이 “므리바에서처럼, 맛사 광야에 있을 때처럼, 너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출애굽 첫세대가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그분의 능력을 목격하고서도 그분을 의심하고 그분의 말씀을 거역하다가 당했던 불행을 예로 들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너희의 조상들은 그 때에,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또 시험하였다. 사십 년을 지나면서, 나는 그 세대를 보고 싫증이 나서 '그들은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요, 나의 길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구나' 하였고, 내가 화가 나서 '그들은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맹세까지 하였다.” (9-11절)


이와같은 성경의 예들과 함께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마음에 진지하게 새겨 넣어야하지 않을까요?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던 하나님이 보시고자 했던 것은, 아브라함이 과연 하나님께서 그의 가장 귀한 것까지 희생하는 것을 요구하시더라도 그것을 복종할만큼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가 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이 된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서 찾아 볼 수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그분은 “겸손한 사람, 회개하는 사람, 나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66:2)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기자가 권하며 경고하는 말이 여러분과 저의 마음을 설득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영원한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분의 말씀을 더욱 신실하게 복종하게 해주리라 확신하며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육신의 아버지도 훈육자로 모시고 공경하거든,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복종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더욱 더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 . . 여러분은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 . 그리하여,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그를 섬깁시다. 우리 하나님은 [그분을 거역하는 자들과 흔들려서 없어질 것들을] 태워 없애는 불(火)이십니다.” (히브리서 12:9, 25, 2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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