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5_창21(22-34)_화평할 수 없는 관계 속에 만들어진 화평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Aug 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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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머물고 있을 때에 그 곳 사람들에게 자기 아내 사라를 자기 여동생이라고 속였을 때에, 그 말을 믿고 그 곳 왕이 사라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데려갔다가,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으로부터 사실을 듣고 경고를 받고서 사라를 다시 아브라함에게 돌려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경고하시기를 만일 사라를 다시 돌려 보내지 않으면,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틀림없이 다 죽을거라고 하셨으니, 그 사건은 아비멜렉과 그 백성이 하루 아침에 다 멸망할 뻔하게 한 위기였습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명령하신 것을 순종하였고, 아브라함은 그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해 줌으로써, 아비멜렉 왕과 그 백성은 멸망의 위험한 위기에서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부터 아비멜렉의 마음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하는 일마다 잘되고 재산과 종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목격하면서,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는데, 이 사실이 아비멜렉에게는 새롭고 심각한 불안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하셔서, 그가 모든 일에서 잘 되고 날이 갈수록 부강해가는데, 하나님의 백으로 그렇게 부강해가는 아브라함에게는 신뢰가 가질 않고, 또다시 자기와 자기 백성을 속이고, 그가 막강한 힘과 큰 부를 축적한 후에는 블레셋 땅을 빼앗고, 자기 백성을 학대할 거라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자기 백성의 미래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 아브라함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서 자기 군사령관인 비골을 동반하여, 아브라함을 찾아 온겁니다.
22 그 무렵에 아비멜렉과 그의 군사령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을 도우십니다. 23 이제 여기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나와 나의 아이들과 나의 자손을 속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십시오. 당신이 나그네살이를 하는 우리 땅에서, 내가 당신에게 한 것처럼, 당신도 나와 이 땅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청합니다. (1) 자기와 자기 자식과 그 후손들을 속이지 말아달라. (2) 자기가 지금까지 아브라함에게 베푼 것처럼, 자기와 자기 백성에게도 친절을 베풀어 달라.
우리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 대해 말한 내용과 아브라함에게 부탁하는 말 속에서, 아브라함에게 심각한 모순이 있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셔서 도우시는 사람인데도, 블레셋 사람들과 그들의 왕에게는 신용을 상실한 사람이 되고 만 겁니다. 이 전에 (창세기 20장) 아브라함의 거짓말을 믿었다가, 왕과 그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로 죽임을 당할 뻔 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아비멜렉과 그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과 함께 해주시고 하는 일마다 잘되도록 복을 주시는 것에 대해서 혼돈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맹세를 받아 내거나 언약을 세워야만 약속을 지킬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속임을 당했던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계신다 하더라도, 아브라함을 믿지를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아비멜렉과 그 군사령관 비골은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며, 이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언약을 세우고 맹세까지 해달라고 한겁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아비멜렉의 요구에 즉시 순응하여 맹세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도 사실 아비멜렉에 대한 큰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비멜렉에게 그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것에 대해 항의했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이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기의 종들을 책망하거나 우물을 아브라함에게 다시 돌려주라고 하지 않은 걸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브라함은 이 일로 인해서 아비멜렉과 그 종들에게 분노의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비멜렉의 진술을 통해서, 아비멜렉은 이 일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적어도 아비멜렉에 대한 오해로 갖고 있었던 분은 풀 수가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우물이 자기 우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물로서, 새끼 암양 일곱 마리를 아비멜렉에게 주고, 그가 왕으로써 이 사실을 인정해주는 가운데 그 우물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래서, 두 사람은 서로 간에 갖고 있던 불신과 불만을 털어 버리고, 앞으로는 서로를 신뢰하고 화평하게 지내기로 약속하는 언약을 세우며 아브라함이 다시 돌려 받은 우물 앞에서 맹세를 합니다. 그리고 그 우물을 ‘브엘세바’라고 불렀습니다. ‘브엘’은 우물이라는 말이고, ‘세바’는 맹세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두 사람은 브엘세바에서 앞으로 평화롭게 함께 공존하기로 맹세를 하고 언약을 세운 다음에 아비멜렉과 그의 군사령관 비골은 그들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를 자기의 거처로 삼고서, “오랫동안 블레셋 족속의 땅에 머물러”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은 서로를 신뢰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불만과 분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늘 서로를 경계하며 거리를 두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이런 상태로 계속 간다면, 화평할 수 없는 관계일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싸움과 전쟁마저 가능한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아비멜렉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아브라함을 찾아가게 하시고, 더이상 서로를 불신하며 불안한 가운데 살지 말고, 앞으로는 서로 신뢰하고 화평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기 위한 언약을 세우게 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아비멜렉은 불안한 마음을 갖고 아브라함을 찾아가서, 마침내 아브라함의 협력과 약속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 대해 오해와 불만을 품고 분한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자신을 찾아와서 화평하게 지내자고 제안하며 아브라함이 오해하고 있던 부분을 풀어 주는 아비멜렉의 손을 잡고 기꺼이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사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이루시려고 하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비밀” (에베소서 3:4) 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의 말을 계속 들어 보십시다.
“5 지나간 다른 세대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려주지 아니하셨는데, 지금은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성령으로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6 그 비밀의 내용인즉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 사람들과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가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7 나는 이 복음을 섬기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 . 8 하나님께서 . . .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고, 9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모두에게 밝히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3 장).
바울이 위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은 이방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유대 사람들과 하나님 나라의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가지는 자가 되는 것”을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후,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지나간 다른 세대”) 그 뜻을 감추셨다가, 예수님이 오신 후부터는(“지금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계시하여” 주신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유대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을 “무할례자들”이라고 하면서 멀리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서로 갈라져서 원수지간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부터는 그분 안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서로 같은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이 에베소서 2 장에서 말하는 것을 함께 들어 보겠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16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17 그분은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셨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18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22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하나님의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그 큰 뜻은 서로 원수지간들이었던 세상의 모든 민족이 그분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평화” 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 땅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이루시는 일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은, 타락한 천사들과 사람들의 죄로 인해 파괴되고 갈라진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연결되어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8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10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 장).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 밖에 있을 때에는, 죄에 묶여서 서로 증오하고 원수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인간들을 예수님 안에 들어 오게 해주셔서,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해주신 은혜를 힘입어, 그분 안에서 하나가 되고 한 몸이 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도 마지막 기도에서 이것을 반복해서 구하신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6 나는,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택하셔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 .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였으며,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참으로 알았고,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었습니다. 9 나는 그들을 위하여 빕니다. . . 11 나는 이제 더이상 세상에 있지 않으나, 그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 .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 . 20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비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22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 장).
히브리서 12 장 14 절에서는 우리가 주님을 뵙게 될 때까지 추구해야 할 두 가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 째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이고, 두번 째가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는 겁니다. 화평한 관계를 이루고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도 이 것을 팔복 중에 하나로 가르치셨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마태복음 5:9).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사람들이라면, 형제자매들과도 화평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되려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은 말까지 했습니다.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3:10 하).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요한일서 4:20 상).
화해와 화목된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이 뜻임을 오늘 본문에서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약성경에서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쳐 두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 (마가복음서 9:50).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 .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11).
“여러분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5:13 하).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그분과 더불어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해주신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용서해주기가 어렵고 사랑하기가 쉽지 않은 식구나 친척, 지인들과 이웃을 향해 좀 더 하나님을 닮은 마음으로 새롭게 대하고자 결심하고, 화평한 관계를 이루어가는 일에 더 힘을 기울이고자 하는 여러분을 성령님께서 격려하시고 힘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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