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3_창18(20-33)_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Jun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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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에 귀를 기울여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간절히 청원(請援, plea) 하고 있는 내용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기도와 간구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브라함은 방금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서(20-21절), 하나님이 두 천사와 함께 소돔과 고모라성을 향해 가시고자 하는 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죄악이 하나님이 더이상 참고 허락하실 수 없는 지경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그들을 벌하시고 멸하시기 위한 것임을 알아차리고는, 그곳에 살고 있는 자기 조카 롯이 그곳 사람들과 함께 멸망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시도록 청원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는 롯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소돔에 살고 있는 의인 중에 한 사람으로만 간주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주님과의 대화 중에 반복해서 언급하던 “의인”이 사실은 그의 조카 롯 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창세기 19장 29절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들에 있는 성들을 멸하실 때에,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롯이 살던 그 성들을 재앙으로 뒤엎으실 때에, 롯을 그 재앙에서 건져 주신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조카 롯을 사랑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기억하시고, 롯이 소돔 사람들과 함께 멸하지 않게 해달라는 그의 청원을 들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아브라함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관찰해 온 롯은 결코 ‘의인’이라 할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어 고아가 된 자신을 큰아버지가 데려다 사랑하고 키우며, 보살펴주었건만, 장성하여 자기 가정을 갖고 재산을 모으기 시작한 후부터는 더 좋은 것들을 큰아버지보다 자기가 먼저 챙기기 위해 자주 다툼도 일어나게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하면서 같이 지낼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말하기를, 가족으로서 계속 서로 다투어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떨어져 살자며, 롯에게 좋은 땅과 물이 있는 곳을 먼저 선택할 우선권을 줍니다. 그 때에도 롯은 상당히 이기적인 마음과 행동을 보였습니다. 롯은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다가, 마치 에덴 동산을 방불케 하는 기름진 요단 온 들판을 보자, 그곳을 자기가 가지기로 하고 떠납니다. 그래서 당연히 아브라함은 그보다 덜 기름진 다른 지역을 갖게 된 거구요. 이러한 롯의 모습과 행동은 그가 얼만큼 배은망덕하고,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며, 미숙하고 이기적인 사람인지를 드러내었던 겁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롯에 대한 전부가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롯은, 자신이 선택하여 가고 있는 지역과 그 곳의 성읍들 중에 소돔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소돔 사람들은 악하였으며, 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3:13). 그런데도, 롯은 서슴치 않고, 그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한동안 “소돔 가까이에 . . . 자리를 잡았다”가, 마침내는 소돔성 안으로 들어가서 거주했던 겁니다. 물론 소돔의 죄가 좋아서 가까이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돔의 풍요로움이 좋아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롯은, 이 땅에서 모으고 즐길 수 있는 물질의 혜택과 그 풍요로움을 얻을 수만 있다면, “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악하게 사는 사람들의 도시도 서슴치않고 들어가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러한 롯을 보면서, 적잖이 불안해하고 실망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롯의 선택들은 결코 의인들은 선택하지 않는 것들이었고, 그러한 그의 모습은 결코, 의인이라 불릴만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롯은 소돔 사람들의 죄악에 동참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면으로 따지면, 소돔 사람들에 비해서 롯은 당연히 의로운 사람이 확실합니다만, 결코 선하거나 지혜롭지는 못한 의인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죄의 도성에 살면서, 그 곳 사람들의 온갖 악행과 추한 죄악들을 보고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그곳에서 많이 벌고 쌓을 수 있는 돈과 재물은 놓지를 못해 죄악의 도성에서 떠나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었던 겁니다.
베드로도 롯을 의로운 사람이라고는 부르지만, 그가 자신의 의로움을 따라서 지혜롭고 평안한 삶은 살지 못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무법한 자들의 방탕한 행동 때문에 괴로움을 겪던 의로운 사람 롯은 . . . 그들 가운데서 살면서, 보고 듣는 그들의 불의한 행실 때문에 날마다 그의 의로운 영혼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7, 8).
그러니, 아브라함이나 베드로나 롯을 의인이라고 불렀던 것은, 엄격한 의미로서 의인이라기 보다, 소돔 사람들과 비교하여 의인이었다는 의미인 겁니다. 롯의 선택과 행동은 하나서부터 열까지 칭찬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에게는 둘도 없는 혈육이요, 여전히 사랑하고 아끼는 조카였던 겁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롯이 살고 있는 소돔이 곧 멸망하게 되고,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놀람 속에 소돔과 함께 멸망하게 될 운명에 놓인 조카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잡은 손을 놓치 않고 하나님이 들어주실 때까지 간절히 청원하고 있는 겁니다.
그 결과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 장인 1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청원을 들어주셔서, 소돔과 고모라는 완전히 멸하시면서도, 롯과 그 아내와 두 딸은 소돔에서 피하여 나올 수 있게 해주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들에 있는 성들을 멸하실 때에,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롯이 살던 그 성들을 재앙으로 뒤엎으실 때에, 롯을 그 재앙에서 건져 주신 것이다” (창세기 19:29).
롯이 소돔의 멸망을 피하여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이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 기도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이미 롯을 소돔이 멸망하는 데에서부터 구원하시려는 뜻을 품고 계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롯이 위급한 상황과 생명을 잃게 된 상황에 놓여있어서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게 된 것은, 어떻게 그리할 수 있었던 겁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에게 롯의 위험한 상황에 대해 알려주셨기 때문에(18:17, 20-21) 그리할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롯이 멸망하지 않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우리가 간절히 기도한 것을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롯을 아브라함보다 먼저 사랑하시고, 그를 구원하시고자, 아브라함에게 그를 위해 기도해야만 되도록 만드셨다는 겁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가서 하실 일에 대해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아브라함은 롯을 살려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면,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쓸어감을 당할 때에, 함께 쓸려가서 멸망하였을 겁니다. 그러니, 누가 롯을 더 사랑하고 구원하고자 한 겁니까? 아브라함이 그러한 마음을 갖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이 먼저 배은망덕하고 밉고 어리석은 짓만 하던 롯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자 했던 겁니다.
사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4).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의 독생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세상을 위한 대속제물로 내어주셨고 (로마서 8:32), 누구든지 저를 믿는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해주신 겁니다 (요한복음 3:16).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의 뜻은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욕구만을 따라 사는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셨던 것처럼 불의 심판을 작정해 두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죄사함과 구원을 받게 하시려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과 구원을 받은 여러분과 저에게, 두 가지 중요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첫째는, 우리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밤낮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와 기도와 중보 기도와 감사 기도를 드리라고 그대에게 권합니다.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 . .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이며, 기쁘게 받으실 만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1, 2, 3).
두번째는, 세상이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세상을 위한 유일한 구원자이신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여러분과 제가 육신의 욕심들을 따르지 않고,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신실하게 따를 때만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 .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죄]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생명]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갈라디아서 5:16, 24-25).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서, 언제 어디서든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사도행전 1:8).
여러분과 저의 끊임없는 기도와 신실한 증인의 삶을 통해서, 가족들과 지인들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길 힘쓰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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