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6_창17(9-14)_골2(11-14)_죄의 몸을 벗겨주신 그리스도의 할례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May 16, 2021
- 9 min read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으라는 명령이나 가르침이 없다고 대답할겁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혹시 이미 할례를 받은 사실은 알고 있냐고 묻는다면, 어리둥절해 하며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두번째 질문은 몸에 받는 할례가 아니고, 다른 의미의 할례를 말하는 겁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나, 신약 시대의 사람들이나 모두,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복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의미인 겁니다. 이 말씀은 마치 이단 교리처럼 들릴 겁니다. 만일 몸에 받는 할례를 의미하는 거라면, 이단 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기 위해 받아야 하는 할례는 몸에 받는 할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손으로 행하는 할례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남자만 받지 않고, 여자도 받아야 하는 할례입니다. 이 할례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할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는 순간에 우리에게 할례를 행하십니다. 우리 몸에 행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에 행하십니다.
바울은 이것을 골로새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손으로 행하지 않은 할례, 곧 육신의 몸을 벗어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또 여러분은 죄를 지은 것과 육신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 때문에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망으로 치루어야 할 죄의 값을]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골로새서 2:11-14).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시대 성도들에게 요구되었던 손으로 행한 할례를 자신의 몸에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즉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셨고, 모세를 통해서 재 강조하셨던 할례는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부터는 취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할례의 의미와 그 안에 담겨졌던 하나님의 뜻까지 취소된 것은 아닙니다. 할례 의식은 더이상 요구되지 않더라도, 할례로 상징했던 하나님의 뜻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여, 구약 시대 성도들은 반드시 따르고 지켜야 합니다.
구약 시대 성도들에게 요구하신 할례 속에는 하나님의 어떤 뜻이 담겨져 있었을까요?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던 창세기 17장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의 나이 아흔아홉이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에게 순종하며, 흠 없이 살아라. 나와 너 사이에 내가 몸소 언약을 세워서,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 . 너희는 포피를 베어서, 할례를 받게 하여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우는 언약의 표이다. 대대로 너희 가운데서, 남자는 모두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 너희의 집에서 태어난 종들과 너희가 외국인에게 돈을 주고서 사온 종도, 비록 너희의 자손은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 (창세기 17:1-2, 11-12).
위의 말씀에 보면, 할례는 언약의 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할례는 하나님과 세운 언약과 그 내용대로 지키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표 또는 상징이라는 겁니다. 하나님 쪽에서는 아브라함을 크게 번성하게 해주셔서, 많은 후손을 갖게 해주시고, 또 아브라함을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주시고,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한 소유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복을 약속하시면서, 이것을 실제로 얻으려면 [1] 아브라함과 그 후손은 하나님을 순종하고, 흠 없이 살아야 하고(창세기 17:1-2), [2] 모든 남자는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명하셨습니다(창세기 17:11-12).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을 잘 읽어 보면, 할례의 대상은 모든 남자였고, 여자들은 제외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순종하고 흠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할례는 상징적 의식, 즉 “언약의 표” 인 겁니다. 언약의 표는 아직은 이루었거나, 실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의 표현 또는 표징입니다. 이것을 사람의 몸에 새기라고 하신 이유는, 사람이 약속한 것에 대해 사람이 기억하고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언약의 표인 할례를 몸에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그 표로 약속한 것을 지키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 할례는 아무런 의미와 소용이 없는 것이 되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얻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언약의 표인 할례는 오히려, 정죄의 표가 되어,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경우들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많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에 언약의 표인 할례를 받은 사실로만, 하나님의 복을 사람이라고 여기고, 사는 것은 자기 생각과 욕심대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비롯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책망하시고 경고하시며, 마음에도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지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모든 길을 따르며,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섬기며, 당신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 땅과 땅 위의 모든 것이 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직 당신들의 조상에게만 마음을 쏟아 사랑하셨으며, 많은 백성 가운데서도 그들의 자손인 당신들만을 오늘 이처럼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고, 다시는 고집을 부리지 마십시오” (신명기 10: 12-16).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아, 너희는 나 주가 원하는 할례를 받고, 너희 마음의 포피를 잘라 내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악한 행실 때문에, 나의 분노가 불처럼 일어나서 너희를 태울 것이니, 아무도 끌 수 없을 것이다” (예레미야서 4: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를 받았어도 마음으로 받지 아니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서 9:25-26).
다시 할례 속에 담겨져 있던 하나님의 뜻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창세기 17장 1-2절을 살펴 봅니다. 왜냐하면, 이 짧은 구절들 속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는 이유와 목적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따르도록 늘 기억하게 해 줄 표인겁니다. 따라서 할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것, 즉 사람으로 하여금 기억하게 해서 따르도록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겁니다.
그러면, 할례가 사람으로 하여금 기억하여 따르도록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창세기 17장 1절 후반부가 바로 그 것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에게 순종하며, 흠 없이 살아라.”
아쉽게도, 이렇게 번역이 되면서, 원어가 담고 있는 본래 의미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못했습니다. 원어에서 전하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새로운 진리를 아브라함에게 계시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순종하며, 흠 없이 살아”야 할 이유와 바탕이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알려 주십니다. 그러나 ‘전능한 하나님’으로 번역된 원어는 “엘샤다이” 라고 부르는 말인데, 사실은 ‘전능한 하나님’ 이라는 의미 외에 ‘충분한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충분한 하나님’ 이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거지만, 아브라함에게 적용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위하여 적절한(충분한) 삶의 원을 그려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원이 규정해 놓은 선 안에서 사는 한, 그리고 그 선이 허락하는 크기까지 다 채우는 삶을 살면, 더 원할 것이 없는 행복을 얻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충분한 하나님’ 이라고 하는 말씀은, 아브라함의 도덕적 영역과 사명의 영역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정해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과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섭리를 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전달하고자, 자신을 가리켜서 엘샤다이 또는 ‘충분한 하나님’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이 사실에 입각해서 살아가라는 의미로 “나에게 순종하며, 흠 없이 살아라” 고 하신 겁니다. “나에게 순종하며” 라고 번역된 말도, 사실 원어로는 “내 눈 앞에서 행동하라” 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눈 앞에서 행동하라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현대어 성경의 번역이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너는 언제나 내 앞에서 살아가도록 하여라. 내가 항상 너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도록 하여라.”
왜 이렇게 살라고 하신 걸까요? 이것은 아브라함이 도덕적 영역에서 허락된 일과, 넘어서는 안되는 일들을 알리기 위해 그어 놓으신 선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 되어 가라는 말씀이십니다. 옳고 그른 일과 선하고 악한 일에 있어서, 늘 자신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것은, 그른 일과 악한 일을 거부하고 옳은 일과 선한 일을 택하는 것을 돕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명령은, “흠 없이 살아라” 는 말씀인데, 이렇게 번역되는 바람에 마치 아브라함더러 책망 받을 일을 하지 않도록 행동에 조심하라고 하는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원어에는 “흠 없이 살아라” 라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원어에서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말했는데, 제대로 번역하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그를 위해서 섭리로 정하시고 기대하시는 것을 “다 채우고 갖추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7장 1절의 말씀과 명령을 정리해 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충분하게 정해 놓고 마련해 놓으신 하나님이시니, 그분이 아브라함을 위해 그어 놓으신 선까지 꽉 차도록 살되, 그 선을 넘어가고자 하는 온갖 욕심들을 따르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 담겨진 말씀이요, 명령인 겁니다.
그래서 이를 돕기 위해 아브라함과 그 모든 남자 자손들은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겁니다. 할례는 히브리어로 명사는 ‘몰롵’이고, 동사로는 ‘모올’ 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원래 잘라낸다는 의미보다는 ‘막는다,’ ‘제한하다,’ ‘한계를 두다’ 라는 의미입니다. 남자의 포피라는 말과 함께 사용될 때에만 잘라낸다는 의미로 사용하구요. 그러나 이 때에도, 포피를 잘라내는 이유와 목적은 성기 사용에 절제와 한계를 두기 위함이라는 의미를 둔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욕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욕심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성욕을 비롯하여, 모든 욕심들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한계로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포피를 베어내는 행위 또는 할례 예식을 통해서, 자신 속에 있는 모든 욕심을 하나님이 그어 놓으신 도덕적 선을 따라서 절제하고 다스리라는 의미를 두신 거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도덕 선 안에서의 삶으로 족하게 여기고, 그러한 삶 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임을 기억하라는 도구가 할례인 거죠.
그래서, 엘샤다이 라는 말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라고 번역하는 것 보다, 나는 충분한 하나님이다 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절제하는 것이 몸에 할례를 행하는 것으로 정말 가능한가요? 그렇지 못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고백한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몸에 할례를 받았다고 모든 욕심을 제어할 수 있었고, 하나님을 온전하게 섬기며 순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깨달았고, 그것을 간증합니다. 그 이유는 율법을 따르려고 해도, 자신은 이미 “육정에 매인 존재로서, 죄 아래에 팔린 몸”(로마서 7:14)인 사실을 매일 매 순간 발견했다는 겁니다.
“18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20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 .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로마서 7:18-20, 23-25).
바울은 자신이 사람의 손으로 자기 몸에 받은 할례는,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것을 전혀 이루어주지 못하는 무용지물이었다고 간증하는 겁니다. 바울은 사람의 손을 통해 받은 할례나, 또 자신의 힘으로나,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온전하게 살 수 없었다고 간증하는 겁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은혜를 받은 바울은 25절에서 외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도 바울을 도울 수 없었고, 자신의 힘으로도 할 수 없었던 성결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직접 자기를 위해 해 주셨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셔서, 바울을 죽음의 몸에서 건져 주셨다는 겁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가리켜 오늘 본문인 골로새서 2:11-14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할례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도 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죄사함도 못받고, 영생과 구원도 못 얻고, 영원히 하나님과 그 백성들로부터 끊어집니다. 이 할례를 받은 사람만 영원히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영원한 백성이 되어 그분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겁니다.
이 할례는 몸에 받는 할례가 아닙니다. 이 할례는 사람이 줄 수도 없습니다. 이 할례는 오직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합니다. 이 할례의 도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 할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입니다.
“11 그분 안에서 여러분도 손으로 행하지 않은 할례, 곧 육신의 몸을 벗어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12 여러분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13 또 여러분은 죄를 지은 것과 육신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 때문에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1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또는 ‘우리가 사망으로 치루어야 할 죄의 값을’]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골로새서 2:11-14).
우리는 아직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신 것으로, 우리 죄의 값을 다 지워 버리시고,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이 마지막 말씀을 잘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라는 말씀은 포피를 베어서 버리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신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우리 스스로 잘라 버릴 수 없고, 절제할 수 없는 죄의 힘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심으로써 완전하고 영원토록 죽여주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죄의 힘이 더이상 권세를 누릴 수 없습니다. “6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7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 . 14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로마서 6:6-7, 14).
그래서 이제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할례를 받고,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새 마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몸을 더이상 죄의 노예로 내어 주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 드려서, 그분을 순종하고 섬기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복을 받은 사람들인 겁니다.
“9 우리가 알기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10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3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14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로마서 6:9-14).
아브라함과 그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요구하신 것은, 그를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셔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전한 삶을 살게 하시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들이 몸에 받은 할례 만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할례는 마음에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라서, 오직 하나님이 해 주셔야만 하는 일이라는 결론이 난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 7장 마지막에서 말하기를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자신도 못했고, 아무도 바울을 죽음의 몸에서 건져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보내주신 겁니다. 아들은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사망의 죄 값을 다 치루어 주셨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시고 새 마음을 주셔서, 성령을 따라 하나님이 세우신 법과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해주신 겁니다. 할렐루야!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로마서 8: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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