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2일 부활절주일설교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Apr 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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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의 부활의 의미
본문: 고린도전서 15:20-28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죽음을 자주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죽어가는 사람들의 사인은 거의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죽음의 이불로 덮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무덤에서 나오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부활절을 맞고 있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바울은 호세아선지자의 말을 인용하며 죽음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도 평시 때에는 바울과 함께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외쳤더랬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서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망의 이불로 온 세상을 덮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현실은 부활의 믿음을 외치는 우리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외치는 우리의 목소리에는 왠지 힘이 빠져 있습니다. 허탈감마저 느낍니다.
사실 이러한 느낌은 제자들도 주님이 잡히시던 순간부터 십자가의 끔찍한 처형틀 위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가졌더랬습니다. 오히려 그 강도가 더 깊고 컸습니다. 그래서 모두 겁을 먹고 어느 밀실 안으로 함께 들어가 숨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얻고, 이 분이 이스라엘이 기다리고 있던 메시야라고 믿고, 모시고 따라 다니며, 이스라엘 땅에서 로마제국의 힘을 몰아내고 다윗의 왕위와 왕권을 되찾고, 이스라엘을 다시 새롭게 재건하게 되리라는 꿈과 기대를 이들의 주를 처참하게 죽인 십자가가 한 순간에 다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이 지나고 첫째 날을 맞이하고 있던 이들에게 믿지 못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소식을 여제자들이 전달해주었습니다. 이들은 눈물콧물로 범벅이 되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달려와서 외쳤습니다. 주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겁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빈 무덤에서 “눈부신 옷을 입은” 두 천사를 보았고, 이들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들은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라며 꾸짖더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살아 계셨을 때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상기시켜 주더라는 겁니다. “인자는 반드시 죄인의 손에 넘어가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빨리 겁을 먹고 허탈감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도 가서 이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주님이 죽음에서 살아나신 사실을 알리라고 해서 이렇게 달려와서 전하는 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도들에 귀에는 여자들의 “말이 어처구니 없는 말로” 들렸기에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도들에게 주님이 자신의 부활하신 모습을 드러내시며 찾아오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게 된 사도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 주께서 이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주님은 이렇게 사도들에게 자신이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모습을 확증해주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기록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 .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곧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이며,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 하였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주님은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고 이 모습을 보며 사도들은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와서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기도에 힘쓰고 모세의 율법서와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읽으며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 분에 대해 기록하고 예언한 모든 부분들을 확인하면서 오순절 성령이 오실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 때까지 사도들이 새롭게 발견한 두 가지 사실을 오늘 여러분과 같이 정리해 보면서, 예수님의 부활이 이 사도들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에게까지 어떤 의미인지를 잘 이해하여, 이 부활 믿음을 갖고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은 겁니다.
첫째로, 사도들은 이들이 어려서부터 익히 알고 있던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들이 드디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언들의 성취가 이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성취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들에 대한 뜻을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서 23:5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하셨던 말씀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까지 다윗의 후손 중에서 한 의로운 자를 그 왕위에 앉힐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를 해왔었는데, 사도들이 이 말씀을 주님이 주신 새로운 시각으로 읽었을 때, 이 속에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예언을 발견했던 겁니다. 그것은 바로 ‘일으킬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 속에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과, 이것을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이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하신 사실을 깨닫게 된 겁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성취는 에스겔서, 학개서, 스가랴서 등에서 예언하신 새성전의 완성입니다. 에스겔선지자는 이 성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예언했습니다. 학개선지자도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이 성전을 보물로 가득 채워서 속과 겉이 모두 찬란한 영광으로 빛날 거라고 예언했습니다. 스가랴선지자는 이 성전에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거하시고 영원토록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실 거라는 예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옛 선지자들의 예언들은 사도들을 포함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이 벅차게 하는 꿈과 기대를 갖고 그 날을 고대하게 만든 말씀들이었지만, 기다려도 아직 오지 않았고 오히려 백 년, 이백 년, 삼백 년, 사백 년의 세월이 훌쩍 가버리기만 했던 겁니다. 그래서 더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자칭 메시야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드디어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태어나셨던 겁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그 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새로 짓겠다시던 새 성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께서 당시 성전에서 장사를 하며 성전을 더럽히던 사람들을 내쫓으실 때, 유대 사람들의 반발을 하고 나오니까, 그 때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록하면서, 그 말씀의 더 깊은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19절)고 하셨는데,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21절)는 사실을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22절)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기 위해 찾아와 머무시는 곳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찾아와 머무셨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백성이 죄를 짓고 끝까지 회개를 거부하며 성전을 더럽혔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성전을 버리시고 떠나셨던 겁니다. 그렇지만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영원히 버리실 수 없으셨고, 언약을 지키시기 위하여 다시 자기 백성과 머무시고 다시는 자기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려는 계획을 세우시고, 이를 위해 새 성전을 짓겠노라 약속하시고 예언하신 겁니다. 그러면서 그 구체적인 실제에 대해서는 다 알리지 않으시고 비유적으로만 묘사하신 것을 에스겔선지자를 통해 기록하게 하신거구요. 그래서 이스라엘백성은 새 성전을 말 그대로 물리적인 건물로 이해를 하고 기대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획하신 새 성전은 물리적 건물이 아니었고, 그 분의 독생자의 몸을 가리키셨던 거였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요한복음 2:21). 이렇기 때문에 사마이라 여인이 유대인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만 있다고 하더라는 말을 했을 때, 예수께서 예배는 예루살렘에서만 드린다거나 다른 곳에서만 드려야 한다고 하는 때는 지났고, 이제는 어디서든지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이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 있는 겁니다. 누구든지 새 성전일 뿐만 아니라, 참 성전인 예수 안에서만 하나님을 알게 되고 경배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인겁니다. 제자들은 멋있고 웅장하고 찬란한 건물로만 이해하몀 기대하고 있었던 새성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그분께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그분의 부활의 모습을 보고서야 깨닫게 된 겁니다.
둘째로,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며 깨닫게 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두번째 출애굽 역사를 이루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루신 첫번 째 출애굽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바램대로 이루어지질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시며, 하나님께서는 새롭고 다른 ‘출애굽’ 구원을 계획하셨고, 이런 뜻을 모세를 통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시하시며 예언하셨던 겁니다. 그리고 이 새출애굽 구원 역사는 새로운 방법으로 이루어내서 영원불변한 열매를 거두도록 보장해두셨습니다.
그리고 이 새 출애굽 구원은 자기 백성을 어떤 악한 나라와 그 폭군의 억압에서 구출해 내는 첫번 출애굽과 같은 구원이 아니라, 그 보다 더 악한 폭군의 억압과 그 종살이로부터 구원해내시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모세보다 더 유력한 구원자를 통해 이루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세상 그 어느 폭군보다 더 악한 폭군이라 함은 ‘죄와 죽음’을 의미합니다. 모세보다 더 유력한 구원자라 함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죽음’에서 살아나게 하셨고, 이 죽음의 근본 원인은 ‘죄’인 것을 여러분과 제가 지금까지 창세기를 공부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데, 이 죄의 값인 사망을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치루셨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서 사망의 권세까지도 영원토록 이기신 겁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 나서야, 지금까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뜻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모세 글과 선지자들의 글이 예언한 모든 것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서 성취된 것을 알게 된겁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이 정말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참 메시야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스라엘만 위한 메시야 또는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메시야, 왕인 것도 시편을 비롯한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새 창조를 시작하신 증거입니다. 그분의 부활은 죄와 죽음이 사라지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받은 새롭게 된 사람들이 다시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고 그분과 동행하며 본 사명을 받들어 섬기면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모든 기쁨과 평안과 영광을 누리며 살 새 하늘과 새 땅을 얻을 것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증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인 여러분과 저에게 같은 능력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이 정말 예수가 죽으신 후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우리의 말과 행실과 모습으로 보일 수 있게 해줍니다.
부활을 믿고 기대만 하지 말고, 부활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있는 증인으로 사십시다. 나만 구원받으면 다 된게 아니지 않습니까? 나를 구원하여 증인으로 삼으신 것을 어떻게 몰라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행전 1:8).

감사합니다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