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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9주설교_창10(1-32) 어떤 저주도 막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

  • Writer: 전재균목사 (Pastor Chun)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Aug 9, 2020
  • 5 min read

“이들이 종족의(clan) 족보를(genealogy) 따라 갈라져 나간 노아의 자손 종족이다(clan). 홍수가 뒤에, 이 사람들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와서,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창 10:32).

홍수 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노아의 아들들이 많은 자손을 낳아서 온 땅에 충만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복이었습니다. 노아의 아들들은 이런 복을 받았으니, 그들의 후손은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고, 번성해서 온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 확실한 겁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창 9:1). 하나님의 복은 이렇습니다. 일단 받은 복은 확실히 영원토록 받은 자의 소유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확신을 시험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복주신 아들을 아버지가 저주한 것입니다.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에게 악한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하지 못할 짓을 했습니다. 술에 취해서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나서, 이런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온 식구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게 하려고, 형제들에게 가서 알린 겁니다. 다행히 형 셈과 동생 야벳은 함의 불의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이 둘은 얼굴을 돌려서 뒷걸음질하여 들어가서 겉옷으로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서, 부끄러움을 감추어 드렸습니다.

노아는 술에서 깨어 난 후에, 작은 아들이 한 짓을 알고는, 그 아들의 막내인 가나안을 저주했습니다. 가나안은 형제들을 섬기는 종이 되어 형제들의 부림을 받을거라는 저주였습니다. 종이 될거라는 것은 힘이 없는 약한 사람들이 될거라는 의미입니다. 가난하고 낮은 신분이 되어 억압을 받으며 살게 될거라는 말입니다. 약소한 사람들의 비참한 인생이 가나안의 후손들의 미래의 모습이 될거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자기 아들이 아무리 못된 악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기 후손들을 저주할 수가 있었을까요? 노아의 저주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단절과 보복을 위한 저주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함의 죄가 얼만큼 악하고 중한 것인지를 후손에게 교육하려는 의도가 더 크다고 봅니다. 함의 죄는 영원토록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벌을 받아야만 하는 죄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성령을 모독한 죄 외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12:31-32). 다만 모든 사람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 지은 죄로 인해 고통스럽고 쓴 열매의 잔을 마서야만 되고, 이 잔을 피할 수 없을 뿐입니다.

함은 이 잔을 자기만 마셔야 했을 뿐 아니라, 그 후손들도 마서야만 되는 중한 죄를 지었던 겁니다. 십계명에 보면, 아비의 죄가 때로는 자손들의 삶에까지 그 대가를 치루게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경고했습니다.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출 20:5). 함은 또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천륜마저도 범하였으니, 노아의 저주는 결코 과한 징계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가나안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상했던 대로입니다. 결국 가나안은 그 아비의 죄가 맺은 쓴 열매의 잔을 마십니다. 셈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살고 있던 가나안의 후손들을 거의 다 멸합니다. 그 중에서 살아남은 족속들은 솔로몬 시대까지 긴 세월 동안 국권과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가 되어 이스라엘을 섬겼습니다. 노아의 저주 대로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역사는 이것을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0장을 읽으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창세기 10장은 홍수 후의 모든 인류가 노아의 세 아들들을 통해서 나온 사람들임을 보여주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들이 각 종족의 족보를 따라 갈라져 나간 노아의 자손 종족이다. 홍수가 난 뒤에, 이 사람들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와서,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32절).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라고 말하려는 내용은 10장에서 나열하고 있는 노아의 세 아들의 자손들 중에서 함의 후손의 수가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야벳의 후손은 14, 함의 후손은 30, 셈의 후손은 26입니다.

아버지에게 악한 짓을 한 후에 아버지의 저주를 받은 함의 막내 아들 가나안의 후손의 수는 11명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들의 2대들 중에서 가나안이 유일하게 제일 많은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참 놀랍지요? 아버지의 저주받은 아들의 후손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아들들의 후손보다 많으니 말입니다. 가나안은 비록 (할)아버지의 저주를 받았으나, 다른 형제들보다 하나님의 복을 더 많이 누리고, 하나님의 바라시는 것을 이루어 드렸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복은 부모의 저주가 무효 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용서하지 못할만큼 큰 죄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나안은 할아버지의 저주를 받는 불행을 맞이했지만, 그것이 그가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까지 빼앗지는 못했던 겁니다. 비록 아들의 죄에 대한 아버지의 저주는, 그와 그 후손에게 뼈아픈 채찍의 징계는 되었어도, 이미 이들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복은 그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함이 죄악을 저지를 것과, 이것으로 인해 노아가 함의 막내 아들을 저주할 것까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함과 그 막내 아들 가나안을 포함하여, 셈과 야벳에게 똑 같은 복을 내려 주셨던 겁니다. 악한 짓을 할 것을 미리 보시고도, 그 악을 은혜로 용서하시고, 사랑해주시면, 더 이상 악한 짓을 하지 않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것을 바라셨기 때문인 거지요.

창세기 12장에는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복주시고자 한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도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 .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3절). 잘 보셨습니까?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복을 주신 것은 궁극적으로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셈)이 받은 복을 똑같이 받게 하기 위해서라는 하나님의 의도를 말입니다! 이 속에는 노아의 저주 대상이었던 함의 막내 아들 가나안과 그 후손들도 엄연히 포함된 겁니다.

이사야서 1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시 새롭게 하시고, 의와 평화의 새 세상으로 만드실 때에 그 세상에서 살게 될 사람들 중에는 함의 후손, 가나안의 후손이 분명히 포함시키실 뜻을 갖고 계신 것을 보여줍니다. “그 날이 오면,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이 생겨, 앗시리아 사람은 이집트로 가고 이집트 사람은 앗시리아로 갈 것이며, 이집트 사람이 앗시리아 사람과 함께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이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 나라에 복을 주며 이르시기를 ‘나의 백성 이집트야(함의 후손), 나의 손으로 지은 앗시리아야(가나안 후손), 나의 소유 이스라엘아(셈의 후손), 복을 받아라’ 하실 것이다”(23-25).

우리 주님도, 열두 사도에게 마지막으로 대 사명을 내려 주시면서 이들을 보내시는 대상은 “모든 민족”(함과 가나안의 후손도 포함한)이라 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마태복음 28:19).

계시록 7장은, 종말 후에 과연 누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입성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이름들은 나열되어 있지 않아도, 모두가 어느 민족에서 나온 사람들인지는 말해줍니다. 우선 이스라엘 중에서 나온 사람들은 십사만 사천 명으로 상징되었습니다(4절). 나머지 이방인들 중에서 나온 사람들은 9절이 보여줍니다. 이 구절이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민족이나 종족이나 백성이나 언어도 빠진 대상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모든’이라는 말 속에는 분명히 노아에게 저주를 받았던 함의 막내 아들 가나안의 후손들도 포함된 겁니다.

하나님은 비록 죄를 지은 자들을 무섭게 징계하시지만, 죄 지은 자들을 향한 긍휼히 여기시며 사랑하시는 마음은 창세 전부터 지금까지 똑 같으십니다. 무섭게 징계하시고 벌하시더라도, 그 고통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모두가 똑 같이 영생의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렇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죄도, 어떤 저주도, 막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 자신이 죄를 회개하기를 거부할 때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구요.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셔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영원한 불행을 선택하는 것 뿐입니다.

가룟유다나 베드로나 똑 같이 예수님을 배반하였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은 일체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사랑하셨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저버렸고, 다른 한 사람은 주님의 사랑으로 돌아 온 것 뿐입니다. 주님은 유다를 용서하시고자 했는데도, 유다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선택이었던 겁니다.

이사야의 소망적인 예언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노아의 저주를 받은 가나안의 후손과 함의 후손도 마지막에는 이스라엘과 똑 같은 복을 누리게 될 거라는 겁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본심이요 변함없는 마음이신 겁니다.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신 우리 모두가 다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가 어떠한 죄를 얼만큼 지을 것을 창조 전부터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그 때부터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겁니다. 바울은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성령을 통하여 알고 난 후, 에베소서 첫 머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이 사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엡 1:4).

정말 믿기지 않지요? 그러나 사실입니다. 창조 전부터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지을 인간일 것을 아셨는데도,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이 사는 사람이 되게” 하실 뜻을 세우시고, 때가 되었을 때에 그분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속 죽음을 당하게 하신 겁니다.

정말 믿기 어려운 사실이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과 저는 이미 이 사랑을 맛보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날이 갈수록 이 사랑의 깊이를 더 알아가며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그분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더 깊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과 저를 변화시켜 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상속하게 될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 더욱 강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사랑과 은혜가 나에게만 머물면 안되지 않습니까?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받게 하신 것처럼, 오늘 나와 여러분을 통해서도,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고 거룩하게 변화시키시고 영원한 소망을 갖게 해주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식구들과 주위 이웃과 지인들에게까지 흘러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수들에게까지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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