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_창12(2-3), 영생으로 부르는 초대장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Oct 14, 2020
- 5 min read
하나님은 언제나 좋은 것과 귀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이 되게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최근 큐티 시간에 묵상해 오던 예레미야서에서 보았습니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예레미야서 29:11).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기 전에 인간이 풍족한 가운데서 안전하고 건강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을 만드신 후, 이 모든 것을 인간에게 다 주시며, 마음껏 먹고 마시고 사용하고 즐기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인간이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의 지존하심을 기억하고 그분을 경외하도록 한 가지 명령과 경고를 주셨습니다.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창세기 2:16-17).
이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자신의 신분의 차이와 둘은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고 기억하게 해줍니다. 특히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분의 말씀과 명령을 경히 여길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말씀을 무시하는 행동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그리한 것에 대한 값을 치뤄야만 했습니다. 낙원이었던 에덴 동산에서 쫒겨닙니다. 생계를 위해서 피땀을 흘리는 수고를 해야만 합니다. 출산 과정이 순조롭지 못하고 생사가 달리는 위험과 고통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평화롭던 부부관계도 끊임없는 갈등과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가장 고통스럽게 지불했어야 한 죄값은 저들의 큰아들이 자신의 동생을 증오하고 죽인, 형제 살해를 목격해야만 했던 고통이었습니다.
뱀의 거짓말에 미혹되어 욕심을 채우려고 그만 창조주의 명령을 무시하고 불순종한 것이 이렇게까지 엄청난 손실과 고통을 가져오리라고는 미처 몰랐을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서야 비로소 깨달은 교훈은 무엇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명령은 일점 일획도 경히 여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지요.
오늘 본문 중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창세기 12:2-3).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에 하나를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의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구원의 초청과 멸망의 경고를 담은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베푸시겠다고 하신 복은 구원과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고, 저주를 내리겠다고 하는 말씀은 영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영생이냐 영벌이냐는 모든 사람이 아브람을 어떻게 여기고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즉 어떤 사람이든 아브람을 축복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되고, 반대로 아브람을 저주하면 그 사람의 몫은 영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아브람은 특별한 사람인 겁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문이 될 수 도 있는가 하면, 멸망의 문도 될 수 있는 존재인거죠.
그러면 아브람을 축복하는 것과 그를 저주하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걸까요? 아브람을 축복하는 것은 아브람이 받은 복을 자신도 사모하고 그 복을 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고 자신도 복을 받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아브람을 저주한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가벼운 것으로 여긴다’ 또는 ‘경멸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아브람을 저주한다는 것은 아브람이 받은 복을 우습게 여기고, 그런 복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말인 겁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람을 축복하거나 저주하는 것은 아브람에게 복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경히 여긴다는 말인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 숨겨져 있는 중요한 비밀은 아브람은 바로 그의 후손으로 오시게 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를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가 자신의 복음서를 쓸 때, 주님의 족보부터 소개하면서 시작한 이유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마태복음 1:1).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복을 베푸시고, 아브람을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시겠다는 말씀의 궁극적인 의미와 메시지는, 누구든지 예수를 모든 사람을 위해 세상에 보내주신 유일한 구원자인 것을 인정하고 믿는 자는 죄사함과 구원과 영생을 주시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우습게 여기거나 믿기를 거부하는 자는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말씀인 겁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지 한 달 후 되었을 때에, 마리아는 자신의 산후 정결예식과 예물을 드리려고 성전에 가면서 아기 예수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 때 성전에 있던 나이 많고 의인이었던 시므온이란 사람이 성령에 감동되어 아기 예수를 팔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누가복음 2:30-32). 그리고 시므온은 마리아에게 아기를 돌려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 . .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누가복음 2:34, 35).
이 아기 예수는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다고 그러지요? 이 것은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으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지만, 어떤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된다고 하신 말씀의 궁극적인 의미가 무엇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말씀인 겁니다. 이 모두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한 분에게 모든 사람의 영혼이 죽느냐 사느냐가 달려 있다는 말씀인 겁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예비하시고 보내주신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느냐 우습게 여기고 부인하느냐는 영생의 복을 얻느냐 영벌의 저주를 받느냐를 결정짓는 선택이라는 거지요.
하나님의 본심은 사람을 심판하고 벌하시려는 것이 아니셨습니다. 인간은 이미 죄를 짓고 타락하여 멸망에 빠져 있는 운명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계획하시고 행하신 것은 죄와 멸망에 빠져 있는 인간을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마음이셨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를 이해시켜 주시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한복음 3:16-17).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시면서 1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어둠에서 살고 있었지만, 빛이 좋아서 어둠에서 나와 빛으로 들어 오는 사람은 죄사함과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복을 받는데, 자기들의 행위가 악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빛의 가치를 모를 뿐만 아니라 빛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을 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어둠과 멸망의 그늘에 있었지만, 복음의 빛이 비추며 다가 왔을 때 그 빛을 좋아하고 사모하며 그 빛 으로 나오신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이요, 복 받은 사람입니다. 아브람을 통해 약속하시고 선포하셨던 바로 그 복을 받으신 겁니다.
그러니 이 복을 받고 누리게 된 여러분과 저는 무엇을 해야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감사와 찬양이 우리를 구원하여주신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에베소서 1:3-6).
그리고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을 가슴에 새기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 열심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도입니다. 나는 사도라고 불릴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린도전서 15:9-10).
그러면 우리가 열심을 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아브람에게 약속하셨던 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겨져 있는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 주위 분들에게 알려주려고, 나를 성결한 그릇으로 만들고, 기도에 힘쓰고, 기회를 만들어서 또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이 사실을 알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득할 말을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대는 [이 복음]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증인]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십시오 . . . 그러므로 . . .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그는 주[님]이 . . . 요긴하게 쓰는 성별된 귀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디모데후서 2:15, 21).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사]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복음의 소]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베드로전서 3:1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