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3주_창12(1-3)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Sep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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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복은 엄청난 복입니다. “너로 큰 민족이” 되는 복을 주겠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무엇이 맘에 드셔서, 아브람을 느닷없이 찾아 오셔서 이런 엄청난 복을 주시겠다고 하는 건지 궁금해집니다. 아브람이 이런 복을 얻으려고, 하나님께 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이런 복을 받을만한 공로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아브람이 특별히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 것도 아닙니다. 아브람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시더니, 상상하거나 꿈도 꾸어 보지 못했던 엄청난 복을 주시겠다는 거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게 된 것과 죄사함과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된 것이 우리에게 그럴만한 공로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는 아브람을 비롯해서 죄를 짓고 사는 불경건하고 불의한 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로마서 3:10-12).
오늘 엄청난 복을 받은 아브람도, 하나님이 그를 찾아 가서 부르시기 전까지는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비 데라를 비롯한 너희 조상은 유프라데스 강 건너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 (여호수아 24:2). 그러니 아브람이나 우리나 본래는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던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에베소서 2:3).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걸까요? 아브람은 어떻게 해서 그 엄청난 복을 받게 된 걸까요? 어떻게 해서 당연히 받아야 할 진노와 영벌은 면하고, 죄사함과 영생을 얻게 된 걸까요?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으로 대속 희생 제물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9:12).
그렇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대속 죽음도 그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성부 하나님께서 그것을 계획하셨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해줍니다. 여기서 “그 전에”는 천지와 모든 것이 창조되기 전입니다. 하나님은 그 때부터 아브람을 비롯해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실 것을 이미 결정하셨다고 바울은 에베소서 1:3-5에서 말합니다.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4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5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정말 놀랍고 감사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도, 아브람도 분명히 죄인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인가요?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이라고만 말해줍니다. 이런 우리를 “선택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4:22, 24)이라고 부릅니다. 사도행전 13:48 에 의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하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정되고 택하심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모두 믿게 되는 거라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도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리브가가 쌍둥이 형제인 에서와 야곱을 수태한 상태에서 하나님은 이미 에서를 물리치시고 야곱을 택하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살아 있게 하시려고, 또 이러한 일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시려고,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시기를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라고 하신 거라고 말합니다 (롬 9:11-12).
바울은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불공평하시다고 말할 수 없는 거라고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로써 인간이 하나님을 평가하기엔 한없이 영적으로 무지하고 무능할 뿐 아니라, 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인거죠. 하나님은 그분이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이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거라고 하고 있습니다 (롬 9:15-16).
우리가 구원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이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닌 겁니다. 우리의 행위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것에 대해서 아무도 자랑할 수 없고, 오로지 감격과 감사와 찬양과 신실한 순종으로 은혜에 보답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에베소서 2:8-10).
여하튼 . . . 본문으로 다시 돌아 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보며 그분의 ‘장담’을 듣게 된 아브람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자기 눈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실제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이것을 의심하지 않고,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셨을테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내용은 아브람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이미 75살의 노년이었고,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한 여인과 결혼해서 살아 오고 있었지만 아내가 임신을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두 사람의 몸은 늙고 쇄약해져서,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터무니 없이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웠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들어 내신 분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아브람에게 드러내시면서 이러한 믿음과 확신도 넣어 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눈이 있고 귀가 있어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지도 못합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눈을 열어 주시고 귀를 열어 주셔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겁니다. “이 세상의 신이[사탄]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4). 바울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바울을 사도로 쓰실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여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서,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고,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또 그들이 죄사함을 받아서 나에 대한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들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실 때 갖게 됩니다. 눈이 열린다는 것은 비로소 하나님과 그 아들에 대한 복음을 믿을 만한 영적 근거와 증거들을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요 은혜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도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한 겁니다.
여하튼, 아브람은 의심과 당혹스런 생각을 오래 붙잡고 뭉그적거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과 약속하시는 말씀을 믿고, 떠나서 가라는 명령을 즉시 순종했습니다. 자기 눈 앞에 서 계신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것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도 천지를 만들어 내신 창조주께서 자신과 아내에게도 자식을 갖게 해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졌던 겁니다. 어디로 가라고 하시지 않고,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어도, 가라는 방향으로 한걸음 한걸음 옮기다 보면 알게 될 것이고 도달하게 되겠지 하는 확신을 갖고, 익숙하고 편하고 안전한 고향을 뒤로 하고, 즉각 나선 겁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이와 같은 아브람과 그 아내의 믿음을 우리의 본으로 보여줍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8절). . . 믿음으로 사라는, 나이가 지나서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 . 약속하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많은 자손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11-12절).
터무니 없이 들렸던 하나님의 약속이었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여 따라 나선 노부부는, 주님을 따라 순례의 길을 오면서,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친밀히 알아가며,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약속하신 것들을 하나하나 이루어주셨습니다. 물론 아브람과 사래는 가나안 땅 전체를 얻거나, 또 자신의 후손이 큰 민족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죽은 후에 그 약속하신 것을 지키셨습니다. 400년이 흘렀을 때 그 후손은 이집트에서 늘어나고 불어나서,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행 7:17).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라고 하신 복을 아브람과 사래의 후손에게 약속하신대로 이루어주신 겁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신다.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변덕을 부리지도 아니하신다. 어찌 말씀하신 대로 하지 아니하시랴? 어찌 약속하신 것을 이루지 아니하시랴?” (민수기 23:19).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이사야서 55:11).
오늘 본문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만 더 하나님에 대해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시고, 이것을 채워주실 때, 그 크기와 분량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은 아브람에게 약속하시는 말씀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여기서 크다는 것은 사람 수를 가리킵니다. 엄청난 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던 아브람이었지만, 노년에 이르도록 자식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아브람은 늘 마음에 깊은 어둠과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하나님이 오셔서 큰 민족이 되도록 자식을 갖게 해주시겠다는 복을 약속하셨을 때, 고향도 버리고, 친적과 아비의 집도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을 붙잡고 따라 나가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겁니다.
이걸 보면, 아브람에게 자식이 없었던 것 역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배부른 사람은 꿀도 지겨워하지만, 배고픈 사람은 쓴것도 달게 먹는다”고 잠언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아브람과 사래에게 자식을 갖지 못하게 하신 것도, 그와 같은 “배고픔” 속에서 오랜 세월 지내면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믿음과 복을 받을 수 있는 마음 밭이 되게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하나님은 아브람의 상상을 초월한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람 마음 중심 깊은 곳에서 그 무엇보다도 갈망하고 있던 것을 주셨습니다. 자식이 없던 노부부에게 자식 하나를 갖게 하셔서 드디어 간신히 대가 이어가게 해주시기만 했어도 엄청난 기쁨이요 행복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크기의 복이었습니다. 이 복에 대해서는 몇 주 더 다루겠지만, 오늘 본문 구절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한 가문이 대대손손 이어지는 것뿐만이 아닐, 하나의 큰 민족, 곧 하나의 큰 국가를 이루게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정말 엄청난 복을 주신 겁니다.
이런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인색하지 않으신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후하고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되, 영원한 것을 주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 (로마서 8:32)이십니다.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되 “큰” 복을 주신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도 항상 “큰”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가까워질 수록, 여러분과 저 역시 후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누구를 대하더라도 나의 최선과 최고의 것으로 섬기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웃의 행복과 편리를 위해서 나를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 가는 복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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