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주설교_창9(20-22)_술취한 노아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Jul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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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ul 17, 2020
20노아는, 처음으로 밭을 가는 사람이 되어서, 포도나무를 심었다. 21한 번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자기 장막 안에서 아무것도 덮지 않고,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었다. 22가나안의 조상 함이 그만 자기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보았다. 그는 바깥으로 나가서, 두 형들에게 알렸다.
우리는 지금까지 노아를 존경스러운 믿음의 조상으로 여겨왔습니다. 그의 믿음의 행적을 본으로 삼고 그를 관찰하여 오고 있었습니다. 홍수 전 노아는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 생각 속에 각인되었던 노아의 이미지를 산산조각으로 깨뜨립니다. 술에 취해 있습니다. 옷을 다 벗어 던진 알몸입니다. 막내 아들이 들어와서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있는 것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술에 만취된 상태입니다.
이렇게까지 취할 정도였다면, 노아가 마신 술은 결코 적은 분량은 아닙니다. 술을 많이 마시게 되는 경우는 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잔치 때인데, 노아는 가족과도 술을 마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막내 아들이 장막 안을 들여다보고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까지 다른 두 아들은 바깥에 있었다고 하니, 노아는 만취되도록 홀로 자기 장막 안에서 술을 마셨던 겁니다. 이건 술로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마신 것이 아닙니다. 술로 마음의 괴로움을 잊어버리려고 마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혼자 마셨다는 것은, 자신의 번뇌를 이해해줄 사람을 한 사람도 찾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온 세상 사람을 다 죽인 그 무서운 홍수를 자기 가족과 함께 면하게 해주시고 살아 남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으니, 당연히 노아의 마음은 감격과 감사와 행복감으로 가득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본문이 보여주고 있는 노아의 모습은 술에 취한 동안 만이라도, 잊어버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고통이 너무도 많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노아의 마음 속에 있던 고통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본문은 노아가 괴로워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그 이유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혹시 자신은 식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고 살아났지만, 나머지 모든 혈육과 온 세상 사람들은 한 날에 홍수로 쓸려가 죽임을 당한 일의 충격과 그 슬픔이 기억에서 떠나질 않아 괴로웠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하튼 본문은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노아가 무엇 때문에 혼자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노아가 홀로 극복할 수 없었던 마음의 고통과 번민을 위해 어떤 해결책을 취했냐는 것과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 살펴보면서,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노아가 취한 해결책은 결코 믿음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의인도 지혜와 믿음의 길을 따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의인도 때로는 믿음의 길을 걷는 법을 고통스럽게 배워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홍수 전에는 하나님과 잘 동행하던 노아가 홍수 후, 자신의 마음에 있는 고통과 번뇌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 방식처럼 술의 힘을 빌어서 해소하려고 한 겁니다.
술에 취하면, 고통이나 아픔을 잠시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에서 깨어나면, 고통과 아픔을 또 느낍니다. 마취제 역할만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또 고통과 아픔을 잊기 위해 술을 또다시 마시고 취해야 합니다. 이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못됩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이었는데도 그 시대의 문화와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면역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노아가 의롭다고 했던 것은 완벽한 의미의 의로움이 아닙니다. 상대적 의로움입니다. 당시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그들보다 의로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노아는 그 시대 사람들의 문화와 사고방식 중에서 어떤 것들은 여과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담았을 겁니다. 그 한 예를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겁니다. 마음의 번뇌와 고통스런 일들이 생기면, 술로 위안을 받고 또 만취하여 잠시나마 마음의 고통을 잊는 그 당시 사람들의 방식을 노아도 따라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노아에게 좋지 않은 것만 가져왔습니다. 술에 취한 노아는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 던져 버렸습니다. 집안 어른이 자식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식들의 경멸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만일 노아가 술에서 깨어 제 정신을 차릴 때까지 아무도 장막 안을 들여다 보지 않았더라면 천만다행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막내 아들에게 그 부끄러운 모습이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막내 아들 함은, 그런 모습을 하고 누워있는 아버지를 경멸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알리면서 아버지를 흉보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노아는 술에서 깬 후에 막내 아들이 한 일을 듣고는 화를 내면서, 함의 막내 아들 가나안을 저주합니다. 자기의 대를 이어갈 손자를 말입니다. 결국 노아의 저주는 자신의 후손들 사이를 갈라 놓고 원수지간이 되게 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세상 사람들 방식으로 해결해 보려고 했던 노아의 선택이 과연 그 의도와 바램을 이루었습니까? 전혀 해결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크고 심각한 문제만 만들고 말았습니다.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노아의 마음에는 분노만 더 늘었구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잘 걸어 가다가도, 깨어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따라 가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길을 따라 우리의 생각과 언행을 새롭게 바꾸는 노력이 중단되면 안됩니다.
아무리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하고 따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노아의 경우처럼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 그리고 사고방식을 따르는 것이 되어, 나중에는 후회할 쓴 열매들을 거둘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로마서 12:2).
만일 노아가 자신의 괴로움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도움과 위로를 구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입었었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랐을 겁니다. 의인으로서, 그랬어야 할 것을 모르지 않았을 노아가 그러질 않은 것이 못내 실망스럽고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당시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렸던 의인도 이렇게 넘어지는 것을 보니, 정신을 차리고 바울의 충고를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12-13).
여러분은 문제가 생기고 괴로운 일이 생길 때, 어떻게 하시나요? 어떻게 해소하시고, 해결하시나요? 마음에 고민과 고통, 분노와 짜증, 억울함과 답답함 등이 생길 때, 하나님을 먼저 찾아 도움과 위로를 구하시는게 여러분의 습관이신지요? 이를 해 본 시편 22편 기자는 간증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주신다"(24절).
유다 왕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 아합과 혼인한 집안이 되었기 때문에 아합이 부탁을 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합 왕이 어려운 부탁을 해왔습니다. 예전에 시리아 왕에게 빼앗겼던 이스라엘 땅 길르앗 라못을 다시 빼앗고자 전쟁을 하려고 하니, 유다 군력을 이끌고 와서 같이 힘을 합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어려운 부탁이었지만 여호사밧은 같이 가서 싸우겠다고 하면서, 아합에게 중요한 제안을 하는데, 이 말에 우리도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주님의 뜻을 알아 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열왕기상 22:5).
여러분과 저도 여호사밧처럼, 어떤 경우에도 “먼저 주님의 뜻을 알아” 보고나서 따르는 습관을 확실하게 세워놓으면, 나중에 가서 감당할 수 없는 후회의 쓴 열매들을 거두는 일이 줄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맺는 열매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찾을 수 없고, 세상이 줄 수도 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며, 의의 길로 인도하는 은혜를 얻게 될 겁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그리스도예수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
마음의 고통과 번민이 생길 때, 노아처럼 세상 방법을 따라 해소해보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먼저 찾아 와서, 다윗처럼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를 돌보아 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는 외롭고 괴롭습니다. 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나를 이 아픔에서 건져 주십시오. 내 괴로움과 근심을 살펴 주십시오. 내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 . . 나의 피난처는 오직 주님뿐입니다. 완전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지켜 주십시오. 주님, 나는 주님만 기다립니다"(시편 25:16-18, 20-21).

저를 위한 명설교 감사합니다 목사님! 저의 지난 삶을 어쩌면 이렇게도 노아를 통해서 설명해 주셨는지 참 신기할 뿐입니다. 이젠 어떠한 일에도 세상의 것들을 쫓지않고 말씀안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찾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