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1주일설교(창8:18-22)_하나님의 마음을 바꾼 기도
- 전재균목사 (Pastor Chun)

- May 3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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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un 1, 2020
18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을 데리고 나왔다. 19모든 짐승, 모든 길짐승, 모든 새,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것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바깥으로 나왔다. 20노아는 주님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집짐승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다. 21주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22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홍수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쓸어갔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악으로 세상을 더럽히고, 썩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기다려 보셨지만, 세상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욕구만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모두 날이 갈수록 죄악 속으로 깊이 빠져만 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마저, 저들 속에 계시던 성령의 인도하심보다 육신의 필요와 욕구를 선호하며 살다가, 결국은 경건의 길에서 떠났습니다(창 6:2). 하나님은 이들과 더이상 함께 거할 수 없게 되셨고(창 6:3), 사람들의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의 꼴도 더 이상 보실 수 없어, 방주 안에 두신 노아의 가족과 짐승들만 남기고, 다 홍수로 쓸어 버리셨습니다.
홍수가 지나간 세상은 물로 깨끗이 씼겨져 있었습니다. 더러웠던 접시가 깨끗하게 닦아진 것과 같았습니다. 홍수는 인류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새롭고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세상을 새롭게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전혀 바뀌질 않았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 가족의 마음은 여전히 죄로 감염되어 있는 상태인 것을 주님이 보셨기 때문입니다(창 8:21). 세상을 가득 채웠던 인간의 죄악은 다 쓸어 간 물이, 사람 속에 있는 죄는 씻어낼 수 없었던 겁니다.
이러니, 사람이 아무리 깨끗하게 된 세상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들, 그 새로움이 얼마나 갈 수 있겠습니까? 지난 주 설교에서 보았던 홍수의 교훈에 따르면, 인간의 죄가 세상을 썩게 만들 때, 하나님은 인간과 세상을 함께 멸하셔야만 합니다. 그러니 노아와 그 후손의 장래가 어떠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이번 홍수는 피했어도, 또 홍수가 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열 일을 제치고, 제일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혹시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고, 언제나 악하기 마련인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미래에는 이들의 죄악을 간과해주시고, 이번 홍수와 같은 식으로 세상을 멸하지 말아 달라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믿음의 제사였습니다. “노아는 주님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집짐승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습니다(창 8:20). 비참하고 가련한 운명을 안고 태어날 후손과 그들의 후손을 위해 저들의 선조는 간절한 기도와, 정성스럽고 엄숙한 마음으로 속죄제사를 드린겁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노아의 제물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창 8:21)
위의 “그 향기”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위안을 드리는”, 또는 분노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달래드리는” 향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노아의 제물을 기쁘게 받으신 겁니다. 노아가 바친 속죄 제물의 향기가 인간의 죄에 대해 진노하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달래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마음 속으로 노아의 기도를 들어 주시기로 다짐하십니다.
21주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22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인류는 그 바뀌지 않는 죄의 속성 때문에, 홍수가 끝났어도, 안심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죄는 곧 다시 머리를 쳐들고,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을 죄악 속으로 몰고 갈 겁니다. 세상은 곧 죄악으로 가득차게 될 겁니다. 홍수 심판이 다시 온 세상을 덮는 일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이것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기정사실입니다.
이러한 비참하고 가련한 운명이, 사실 여러분과 저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노아 이후 오늘까지 지상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므로, 홍수 전 세대들처럼 다 하나님의 심판의 물로 쓸려 버려져야 하는 처지입니다.
이런 처지를 개인적 차원에서 표현한 바울의 비명을 들어 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그리고 이를 범인류적으로 표현해 본다면, "오호라, 심판의 홍수를 피할 길이 없게 된, 가련하고 비참한 인류를 위해 이 홍수를 막아줄 자가 누구리요!"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누가 이 홍수를 막아 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이 일을 노아가 해 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후손을 위해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구하며, 속죄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고, 그가 구하는 것을 들어주시고자 다짐하십니다.
보십시오! 노아 한 사람의 제사장적 중보와 기도가 지금까지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실을 볼 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지 않습니까?
오늘 저는 바로 이 사실을 여러분과 함께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여러분과 저의 제사장적 중보와 기도를 위한 큰 격려와 힘을 얻고 싶은 겁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중보하고 기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종종 우리가 기도해주는 이들에게 (영적으로 또는 육신적으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달려 있는 거기 때문에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확신이 더 깊어지고 견고해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리는 기도들 중에는 응답이 되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 여부를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다. 그리고 기도는 기분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십시다. 기도는 해야 할 일이 생길 때는 물론이요,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 시간이 되면 내키든 내키지 않든 무릎꿇고 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제사를 기뻐하시고 그의 기도를 쾌히 들어주신 이유를 알고 싶지 않으세요? 노아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노아를 기뻐하셨을까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때문입니다.
이 경외심은 노아의 지식과 생활 속에 진하게 배어 있었습니다. 우선 그의 순종을 들 수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순종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방주가 확증해줍니다.
노아의 경외심은 그가 하나님께 드린 제사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정결한 짐승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제물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순결하신 속성과 상징적으로 대칭되어야 하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드리지 않고 정결한 것으로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인지를 모르면, 바른 제물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의 예배를 위해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그분에 대한 바른 지식을 따라 드려야 합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요한복음 4:22).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4).
노아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정결한 짐승들 가운데서 골라서 드린 것은,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노아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체험한 사람인 것을 보여줍니다.
노아는 또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노아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바른 것과 옳은 것을 사랑하십시오. 비뚫어진 것과 그릇된 것은 혐오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진리의 편에 서고, 거짓은 코로나바이러스처럼 멀리 거리를 두십시오. 정직한 마음은 하나님의 거처요, 속이는 마음은 사탄의 안방입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알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성품을 사랑하고 닮아가십시오. 사랑. 화평. 의로움. 성결함. 오래참음과 기다림. 온유함. 겸손. 절제. 신실함. 선함. 이런 성품들을 추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해주시고, 더 가까이 와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의로운 사람의 마음이며, 사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그 마음을 잘 알아 주십니다. 입을 열지 않아도 벌써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 주십니다. 이런 사람이 소원을 말씀드릴 때 들어 주실 때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 기도할 때, 귀를 기울여 주십니다. 이런 사람의 눈물을 꼭꼭 병에 담아 두시고 그 눈물 방울 하나하나 속에 담겨져 있는 이유와 의미와 아픔은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베드로전서 2:5)이라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제사장은 죄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하여 화목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분의 복과 은혜와 자비를 세상에 내려주시도록 하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죄인들은 용서받고, 고침받고, 소망을 얻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제사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제사장은 제사장의 제복만 입었다고 (또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만한다고)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마음과 성품이 그 생활과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의 제사를 받아 주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신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던 겁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가까이 갔던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노아의 제사와 기도는 몇 천 년이 흘러도 그 효력을 발휘하여 (그렇지 않았으면 인간의 죄 때문에 벌써 대 홍수에 쓸려가버렸을) 세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래서 그동안 하나님의 외아들도 오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속죄제물로 드리실 수 있으셨기에 (그렇지 않았으면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었을)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그 수에 여러분과 저도 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의로운 한 사람의 제사와 기도는 정말 그 힘이 큽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야고보서 5:16)

조금있다 설교 봐야지 한게 벌써 또 일요일이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목사님!